■ 송종훈의 백년前 이번週

‘처음’, 어떤 일의 맨 앞을 뜻하는 설레는 말이다. 100년 전 이번 주 신문에는 유독 ‘처음’이라는 기사가 많이 눈에 띄는데 그 기사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먼저 1925년 3월 24일 동아일보에 한 남성이 소개된다. ‘평남 강동군 출생 김대우(金大羽) 씨는 몇 해 전에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규슈(九州)제국대학 지질학과(地質學科)에 입학하여 지질학을 연구해 오던 중, 금년 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는 바 조선인으로 지질학 연구하기는 김씨가 처음이라더라.’

이어 다음 날인 25일 조선일보에도 비슷한 기사가 실린다. ‘평남 진남포 출생으로 경성 중앙(中央)학교를 일찍이 졸업하고 진남포에서 곡물 무역계에 십수 년 종사하다가 5년 전에 독일에 유학한 임창하(林昌夏) 군은 금년 2월에 백림(伯林·베를린)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남부 독일 뮌헨에 가서 그곳에 있는 삐루(맥주) 실습학교에 입학하고자 3월 초순에 그곳으로 향하여 떠났다는데, 이 길로 학업을 닦기는 조선 사람으로 처음이라더라.’

같은 날 또 하나의 ‘처음’ 기사가 보인다. ‘일본 동경 시바우라(芝浦)에 있는 동경고등공업공예학교 6부 중 인쇄공예과(印刷工藝科)를 조선 사람이 졸업하기는 처음인데, 그는 백남두(白南斗·27) 군이다. 그가 졸업한 인쇄공예과는 일본에서도 처음 졸업생을 내게 되었다더라.’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채택된 재봉(裁縫) 교과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이틀 뒤 27일 기사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선생 손정규(孫貞圭) 양은 바느질에 대한 교수(敎授)의 불편함을 깨닫고 다년간 조선 의복의 침선법(針線法)을 연구한 결과 ‘재봉 참고서’라는 책을 새로이 편찬하였다. 여자고등보통학교와 또한 같은 정도 학교의 교과서로 채용하게 되었으니 실로 조선 여학생들의 유일한 재봉보감(裁縫寶鑑)이 될 줄 믿는다’라고 실렸다.

이처럼 명예로운 처음도 많았지만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처음도 있었다. ‘충북 보은군 보은면 죽전리에 사는 이월선(李月仙)이라는 금년 15세의 묘령(妙齡·꽃다운 나이) 소녀는 현재 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바, 얼마 전에 그 친모(親母)와 오라비가 현금 300원을 받고 그곳 유곽(遊廓·창녀들이 몸을 팔던 집)에다가 팔아먹었으므로…(중략)…이같이 자식을 인육(人肉) 시장에 팔아먹는 일은 보은에서는 처음이라고 매우 떠드는 모양이더라.’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선시(禪詩) 답설게(踏雪偈·함부로 걷지 말라)에서 말했다.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오늘 그대가 남긴 발자취, 언젠가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라는 뜻이다. 이 시는 김구(金九) 선생이 1948년 남북 협상차 38선을 넘어가면서 읊은 것이기도 하다.

19세기발전소 대표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