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李 지지율 ‘갇힌 1위’ 지속 현상
文 적폐청산 확대 우려가 근원
與 아닌 당내 反李도 타도 대상

노선·여론보다 보복논리 지배
崔 탄핵안 발의, 집단 공격 관성
부끄럼 없는 野 칼춤에 몸서리


“정치 보복은 있어서는 안 되고 해서도 안 된다. 이런 단어조차 없어졌으면 좋겠다”(2025년 1월) “정치 보복을 끊어야 하고, 기회가 되면 당연히 내 단계에서 끊어야 한다”(2024년 11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다른 말도 했다. “어떤 대통령 후보가 정치 보복을 공언하나. 하고 싶어도 꼭 숨겨놨다가 나중에 몰래 하는 거지. 세상에 대놓고”(2022년 2월) “누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는지 드러나기 때문에 (부결을 호소했다)”(2025년 3월).

한 입으로 두말을 한 게 어디 그뿐이랴. 중도보수, 실용주의, 기본사회, 기업주도 성장, 주 52시간제, 상법 등을 농락한 변설(辯舌)이 놀랍지도 않을 지경인데, 정치 보복은 연원과 본질이 다르다. 이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 대선 주자이지만, ‘갇힌 1위’다. 지지율은 36%(한국갤럽 3월 3주)이나 ‘의견 유보’(37%)층을 못 뚫는다. 야권 경쟁자가 미미한데도 ‘정권 교체’(51%)층을 흡수하지 못한다. ‘비호감’(57%, 전국지표조사 3월 3주)이 벽이다. 보수층 결집(혹은 과표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비토’(거부)가 강고하다. 일방, 탄핵 중독, 독재 등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을 관통하는 진앙이 정치 보복이다.

정치학자 대다수는 적대적 정치가 전면 부상한 시점을 문재인 정부로 지목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빌미로 진행된 ‘적폐 청산’이다. “과거를 악으로 규정하고 시스템이 아닌 인적 처벌에 집중했다. 정치를 선악으로 나눠 타협이 작동할 공간이 줄었다. 극단적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적폐 청산의 나쁜 후유증이다”(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근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진영의 적개심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완화되는 듯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이 다시 깨웠다. 2009년 5월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정치 보복 사죄하라”고 외쳤던 증오는 2018년 3월 이 전 대통령 구속에 이르렀다. 대통령 파면을 주도하고, “나, 문재인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없다”고 했던 후보가 집권하자 벌어진 일들 가운데 하나다.

당시 이 대표(성남시장)는 “적폐와 불의를 청산하는 게 정치 보복이라면 맨날 해도 된다”(2017년 7월)고 했다. ‘사이다’로 포장된 적개심은 비단 여권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진영 내 소수 비주류였던 친명에는 친노·친문·386 운동권 적통들도 기득권이었다. 2018년 경기지사 경선,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경선을 치르면서 받았던 멸시와 내침을 뼈아프게 새겼다. 월 당비 ‘1000원짜리 당원’으로 무시당했던 개딸들이 그들을 떠받쳤다. 야당판 반(反)엘리트주의였다. 2021년에 130만 명 정도였던 당원 규모가 4년 새 510만여 명으로 커지는 데 주된 동력이었다. 당원 주권 정당이란 깃발이 패배자인 이 대표의 국회 입성과 당 대표 등극을 가능하게 했고, 1인 체제의 절대권력을 만들어줬다. 이 대표에게 5개 재판을 받게 한 윤석열 정부나, 반기를 드는 비명계나 똑같은 척결 대상이 됐다.

노선이나 민심보다 보복 근본주의가 당을 지배했다. 2023년 9월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이 대표가 “민주당의 부족함을 고쳐 달라”고 하자 찬성 의원 색출전이 벌어졌다. “배신행위”(정청래) “등에 칼 꽂았다”(박찬대). 고강도일수록 개딸이 열광했고, 그 수위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숨겨놨던’ 복수심이 작동돼 비명계가 공천에서 횡사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 피선거권 상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움직이면 죽는다”(최민희)고 쏴댄 것은 ‘방탄’을 넘어선 집단적 공격성의 증거였다. 윤 대통령의 실정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호재로 삼아 “따박따박 탄핵하겠다”(김민석)면서 소추권을 남발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몸조심하라”고 협박한 다음 날 서른 번째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도, 제동 기능을 상실한 보복 공격의 관성 말고는 달리 이해되지 않는다.

이 대표 선거법 재판 2심 선고가 이틀 앞이다. 대통령 탄핵심판도 조만간 결말이 난다. 누구에게 어떤 선고가 내려지든 집단 광기가 광장을 휘감을 것이다. 더 몸서리쳐지는 것은 한 치 자성이나 부끄러움 없이 휘두를 게 뻔한 망나니들의 보복 칼춤이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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