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청산불 창녕 진화대 투입현장
최초 발화 2㎞ 떨어진 곳 투입
진화작업중 역풍에 퇴로 막혀
4명 숨지고 5명은 2도 중화상
주불은 잡혔지만 곳곳서 ‘연기’
대피소 100명 눈 뜬 채 밤새워

산청=박영수·노수빈·이재희 기자
지난 22일 경남 산청 산불 진화 지원을 왔다 불길에 휩싸여 4명이 사망한 창녕군 광역산불진화대가 투입된 현장은 참혹 그 자체였다. 이들이 타고 온 산불진화차량은 뼈대만 남은 채 잿더미가 된 임도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24일 창녕군청 산불진화대 투입 현장에서 마을주민, 당시 같은 구역에 투입된 창원시청 진화대, 구조작업을 펼친 경남도청 관계자 등을 통해 진화대가 역풍으로 거센 불길에 고립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창녕군 진화대 9명은 22일 오전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산불 최초 발화지점에서 2㎞ 떨어진 구곡산 자락에 투입됐다. 창녕군 진화대는 옆 골짜기인 개미정산장 쪽에서 올라가 잔불 정리 작업을, 창원시 진화대는 산자락을 경계로 위쪽 계곡의 사찰(성화사) 쪽으로 올라가 잔불 정리 작업을 시작했다.
창원시 진화대는 타고 온 1t 산불진화차량과 지휘차량을 성화사 인근에 세워놓고 7분 능선까지 올라가 잔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산 아래쪽은 불이 붙지 않고, 산 위쪽이 불타 7분 능선 위쪽에서 잔불 정리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먹고 난 오후 1시쯤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불이 붙지 않았던 산 아래쪽에서 불길이 치솟아 퇴로가 막혔다. 창원시 진화대는 “아래로 대피할 수 없다고 판단해 연기가 나지 않는 산 위쪽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창원시 진화대 반장은 “불길이 잦아들어 내려오는 길에 절은 불타고 있었고 타고 왔던 산불진화차량과 지휘차량도 80% 이상 불에 탄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오후 1∼3시 사이) 불과 옆으로 700m 떨어진 개미정산장 쪽에서 올라간 창녕군 산불진화대는 9명의 사상자가 났다. 창녕군 진화대는 외공리 산120-1 임도에 산불진화차량을 세워 놓고 80m가량 위로 올라가 진화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역풍으로 불길이 아래쪽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면서 화염과 짙은 연기에 갇혔다. 작업자들은 흩어지면서 개울 양쪽에서 4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계곡 웅덩이에 몸을 숙여 화염을 피한 5명은 온몸에 2도 중화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에는 이들이 타고 온 차량만이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소된 채 발견된 창녕군 산불진화차량은 쇳덩이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차 유리는 깨지거나 녹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타이어도 녹아 철심만이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한편,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은 주불이 진화됐지만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까만 재가 흩날리고 있었다. 24일 오전 찾은 마을에는 불길에 무너져내린 집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민가 앞에 놓인 트랙터는 천장이 녹아 휘어진 상태였다. 주민 백모 씨는 “뒷산이 다 타는 데 30∼40분밖에 안 걸렸다”며 “불길이 마을에 내려올 때마다 가정용 가스통이 펑펑 터지는데, 마치 지옥 같았다”고 산불 당시를 회상했다. 혹시라도 잔불이 살아날까 계속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주민 박윤조(71) 씨는 “도깨비불처럼 한쪽에서 난 불이 휙 날아가 건너편의 들판으로 달라붙었고, 온 마을이 불타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70년 산 집이 불타 아버지 영정 사진도 찾을 수가 없다”며 가슴을 쳤다.
단성중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시천면 이재민 100여 명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3일째 임시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동마을 주민 채영자(85) 씨는 “마을 뒷산에 불기둥이 퉁 내려앉더니 갑자기 솟구쳤다”며 “비도 안 오고 바람도 세다는데 그런 불이 또 생기면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자기 집 앞마당까지 불이 들이닥쳤다는 중태마을 주민 김모(70) 씨 또한 “어젯밤에는 잠도 못 잤고 뉴스에 나오는 연기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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