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민감국가 리스트에 우왕좌왕
‘핵 자강論 탓’ 황당한 주장도
그래도 신속한 제외 진력해야

미국은 정보 탈취에 매우 예민
최근 수미 테리 사건 타산지석
정치권 정쟁化도 절대 없어야


최근 워싱턴에서 날아온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소식은 한미 관계의 불확실성을 가중시켰다. 우선, 2주간 우리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호된 지적이 있었다. 목록에 오른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다 보니 진단 역시 중구난방이었다. 혈맹국가 대한민국이 중국·러시아·북한 등 불량국가의 반열에 오른 데 대한 당혹감도 작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마가(MAGA) 정책의 폭풍우가 몰아쳐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임기 말에 지정 조치했다는 점에서 대미 불신까지 증폭됐다. 이스라엘과 인도까지 목록에 오른 만큼 우려할 바가 아니지만, 미국이 견제하는 25개국에 속한 만큼 한미동맹의 신뢰가 흔들렸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 에너지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조속한 해제를 요청함으로써 소동은 일단 진정 국면이다. 다만, 확실한 재발 방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하며, 4월 15일 이전에 해제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역대 특정 국가 지정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재발을 막기 위해 모호한 부가 설명을 내놓을 뿐이다.

하지만 민감국가 사태가 주는 정책적·외교적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은 과거 두 차례 목록에 오른 이력이 있다. 소를 잃었기 때문에 외양간을 고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먼저, 안보와 과학기술 등 첨단 정보 탈취에 대한 미국의 체계적이며 촘촘한 방어 및 차단 체계를 알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미국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전 세계 국가가 정보를 빼내는 데 혈안이 된 나라다. 워싱턴 역시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 당국이 365일 감시 체계를 가동한다. 대상은 동맹, 비동맹을 가리지 않는다.

1996년 미 해군 정보분석관 신분으로 대사관 한국 무관에게 북한 잠수함 활동 정보 등 기밀을 제공한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은 재미교포 로버트 김 사건과 지난해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체포된 수미 테리 사건 등은 미국의 정보 감시 및 법체계를 경시한 결과다. 동맹이라고 정보 탈취까지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국 방문자는 기억해야 한다. 어설픈 ‘보안’ 규정 위반부터 첨단 소프트웨어의 유출 등은 간첩죄로 처벌될 수 있다. 외국 스파이들이 간첩죄로 기소되면 면책되지 않도록 이중삼중의 견제 장치를 해놨다.

지난해 미 에너지부 산하 17개 기관을 방문한 한국 관계자는 2000여 명이나 된다. 향후 국정원 등 관계 기관에서는 외국 연구소 및 부처 방문 시 유의 사항에 대한 철저한 보안 교육을 해야 한다. 섣부른 애국심 발동은 국가 간의 신뢰를 훼손한다.

다음으로, 정치권에 대한 정쟁 자제 요청이다. 민감국가 지정 소식이 알려지자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핵무장론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오도했다. 일부 전문가조차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부화뇌동했다. 일부 언론은 1980∼1990년대 민감국가 지정 사례를 무리하게 노태우 정부 및 이후 정부의 핵무장 움직임과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부정확한 기사다. 노 전 대통령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고, 850개의 미국 전술핵무기가 한국에서 철수했다. 정치권의 맥락이 맞지 않는 정쟁 성격의 편향적 선동은 자제돼야 한다. 일부 확증편향 전문가가 관련 정보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 봐라, 핵무장론 때문에 사태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하는 주장은 무책임한 정치인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

한미 간 이면에 잠복한 기술정보전쟁을 주시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수력원자력의 22조 원 상당의 체코 원전 수주 이후 미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기술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갈등은 중요한 단서다. 올해 한국은 네덜란드 등 유럽 3개국 원전 입찰에 나서지 않았고, 웨스팅하우스는 단독 입찰했다. 미국의 기술 보안에 대한 예민함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끝으로, 한미 관계의 전략적 관리다. 전 세계가 긴장하는 MAGA 시대를 맞아 작은 현안도 치밀하고 세심하게 관리돼야 한다. 공명심에 찬 섣부른 주장은 자제돼야 한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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