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초록우산 지원으로 전북 익산시 부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가족 돌봄 아동 행복 증진사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지난해 11월 초록우산 지원으로 전북 익산시 부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가족 돌봄 아동 행복 증진사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익산 부송복지관 ‘가족돌봄 아동 푸드 테라피’ 프로그램

지난해 9개월간 20명 참여
요리하며 식습관 길러주고
‘힐링캠프’선 마음 되돌아봐
또래들과 놀이체험도 진행

아동들 우울감 절반으로 줄어
“다음엔 부모님과 오고싶어”


전북 익산시에 거주하는 김모(13) 군은 ‘밥 챙겨 먹었니’ 라는 물음에 늘 “라면 먹었어요”라고 답하는 아이였다.
김 군은 홀로 가정 경제를 책임지느라 주·야간으로 일을 쉬지 않는 어머니, 고등학생인 누나를 대신해 뇌병변장애를 앓는 아버지를 전담으로 돌보는 ‘가족 돌봄 아동’이다.

한창 성장기,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시기지만 김 군의, 그리고 누워만 지내는 아버지의 끼니를 챙겨줄 사람은 김 군 스스로밖에 없었다. 그런 김 군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라곤 ‘라면’뿐이었다.

그런 김 군이 달라졌다. 이제는 스스로 채소도 썰고, 고기에 칼집을 넣을 줄도 안다.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스마트폰이나 TV만 보던 습관도 완전히 달라졌다. 클라이밍이란 새로운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클라이밍 벽을 오르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더 어려운 코스를 해보겠다”고 도전한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기력함,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만 했던 수동적 태도를 완전히 떨쳐낸 것이다.

가족 돌봄 아동들이 지난해 9월 직접 요리를 만들어본 뒤 시식하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가족 돌봄 아동들이 지난해 9월 직접 요리를 만들어본 뒤 시식하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김 군의 이 같은 긍정적 변화는 ‘2024 초록우산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전북 익산시 부송종합사회복지관이 진행한 가족 돌봄 아동 푸드테라피 프로그램 ‘건강을 먹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덕분이다. 복지관은 지난해 3월 4일부터 11월 31일까지 총 9개월 동안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질병·장애·정신건강 등 문제가 있는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가족 돌봄 아동들이 올바른 식습관을 갖게 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으며 일상생활 속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익산 지역 아동 총 20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가족 돌봄 아동 가정방문 △올바른 식습관 갖기 △푸드테라피 △힐링캠프 △우리 동네 놀거리 등으로 구성됐다. 먼저 아동들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가정 내 요보호자의 상황과 아동의 상태를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됐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왜 올바른 식습관이 중요한지 영양교육을 진행했고, 스스로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요리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한 끼 때우는 식사가 아닌 제대로 된 밥상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이다. 또래와 달리 가족을 돌보느라 정서적으로 지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도 병행됐다. 아이들은 전북지역 관내에서 1박 2일 캠핑하며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또 집 근처에서 놀 방법을 찾고 체험함으로써 온전한 ‘가정으로부터의 휴식’ 시간도 가졌다.

가족 돌봄 아동들이 지난해 11월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가족 돌봄 아동들이 지난해 11월 ‘나만의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프로그램 종료 후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음에는 부모님과 함께 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의 의견에만 동조하던 소극적인 아이들이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하겠다” “이것도 좋다”며 적극 의견을 내기 시작하며 자기 주도성이 높아진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 영양 지식 평가를 사전·사후 검사를 통해 진행해본 결과, 식재료에 대한 지식 역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음식에 어떤 식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영양소가 들어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면 사후검사 때에는 “달걀에는 단백질이 많다”와 같은 구체적 답변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자신의 키나 몸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레르기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던 아이들이 신체정보를 정확히 인지하게 됐다.

가족 돌봄 아동들의 정서적 안정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프로그램 참여 전 아동들의 평균 우울 점수는 5점이었는데, 종료 후에는 2.4점으로 감소했다. 가족 돌봄 아동들의 가정 내에도 변화가 보였다. 처음 가정방문을 했을 때 집안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았던 가정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점점 정돈돼 갔다고 한다. 특히 보호자들은 가정의 위생 상태에 대해 별로 인지하지 못하다가 프로그램이 후반기로 갈수록 “더 치웠어야 하는데”라며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보호자의 인식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복지관 측은 “단순 아동 지원을 넘어 보호자의 양육 태도변화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아동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 건강 관리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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