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미·러 밀착에 유럽 위기감 고조
우크라戰 졸속 마무리 우려에
佛 드골式 자체 핵무장론 제기

美 핵우산 약화시 韓 안보 위기
조태열 장관 ‘플랜 B’ 언급 주목
동맹 공조로 북·중 核 대비해야


유럽과 미국 관계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나빴지만, 요즘과 비교할 때 당시는 감정적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을 뿐이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하며 러·우 전쟁 종결을 밀어붙이자 미·유럽의 대서양동맹은 파국 조짐이 뚜렷하다.

유럽의 대미 불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협상 추진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안보보다 러시아 입장을 대변하고 두둔하는 경향을 보이며 표면화했다. 유럽에선 푸틴 대통령 편이 된 듯 행동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1939년 뮌헨협정 때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 말을 맹신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동일시하는 기류마저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구도에 따라 전쟁을 끝낼 경우, 유럽 각국이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크기 때문이다.

60여 년 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결단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독일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츠 기민당 대표는 드골식 화법으로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했고, 카스파 벨트캄프 네덜란드 외교부 장관은 “모두 드골주의자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겠느냐’며 자체 핵무장 불가피성을 피력한 드골의 말이 유럽을 각성시키고 있다.

유럽에서 부는 드골 바람은 현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다. 드골은 1950∼1960년대 프랑스를 이끌면서 미·소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타격 능력을 가져야 프랑스가 산다고 판단해 핵무장을 강행했다. 드골의 안보 독자 노선에 미국이 반발하며 대서양동맹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 안보의 핵심축 역할을 해왔고, 프랑스의 핵은 미국이 유럽에 제공해온 ‘나토(NATO)식 핵 공유’의 보완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핵’에 집중한 드골의 전통을 ‘유럽의 핵’으로 격상시키며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는 유럽의 리더로 부상했다. 미국의 핵우산 약화에 대비해 프랑스 핵을 바탕으로 유럽의 안보 자강을 구축하겠다는 행보를 한 덕분에 레임덕 위기도 깨끗이 해소됐다. 트럼프 1기 때만 해도 나토식 핵 공유에 만족했던 독일은 프랑스에 먼저 핵 공유를 제안했다. 대서양동맹 파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폴란드에서는 자체 핵무장론과 함께 미국 핵무기 배치나 프랑스 핵 공유 추진론이 힘을 받고 있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무풍지대다. 최근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파동을 통해 분명해진 것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트럼피즘이 초래할 안보적 위험성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이 파동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중 성향 때문으로 몰아붙였고, 민주당은 여당의 자체 핵무장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셉 윤 주한미국 대사대리가 “외교정책과 무관한 단순한 기술 보안적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핵 자강과 관련한 여야의 정쟁 와중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자체 핵 역량과 관련해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오프 더 테이블은 아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똑같은 질문이 나왔을 때 “확장억제가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옵션”이라고 했던 때와 다른 기류다. 트럼프 2기에서 심각해질 안보 위기에 대비해 ‘플랜B’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중대한 전환(significant shift)’으로 평한 배경이다.

‘드골의 순간’은 한국에도 닥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 선에서 북한 김정은과 타협하면 한국은 북핵에 노출된다. 유럽에서처럼 미국 핵우산까지 흔들리면 안보 위기는 더 커지기 때문에 한시가 급하다. 첫째,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원자력협정 틀 안에서 가능한 우라늄 저농축으로 핵 역량을 쌓아야 한다. 둘째, 수교 60주년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본과 농축·재처리 공조를 해야 한다. 셋째, 미국과 북·중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친화적 핵 개발도 모색해야 한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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