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항해 모습 조감도. HD현대중공업 제공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항해 모습 조감도. HD현대중공업 제공


2021년 1월 방사청의 보안심사위 결과 총 26건 ‘개념설계’(군사 3급 비밀) 무단 도용 확인
보안사고 개입 후 보안심사위원장 맡은 방사청 A부장 퇴직 3년 뒤 2024년 4월 한화오션 입사
방첩사, ‘비밀 무단 생산 및 보관’ 공소시효 경과로 수사 종결, ‘무단 도용’ 미제 남겨 또 다른 논란 자초
개념설계 보고서 도용 행위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과 방위사업법 위반 소지
A부장 공직자윤리법상 ‘행위제한’ 위반 및 부정처사후 수뢰죄 여부 조사해야
한화오션, KDDX 개념설계 무단도용 의혹에 “불법 없었다” 반박




7조8000억원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1년 가까이 표류하는 가운데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군사기밀 무단 인용’ 혐의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전직 방위사업청 고위 인사가 한화오션의 임원으로 근무 중인 사실이 밝혀져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건조 사업자 선정 방향을 놓고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분과위원회)는 지난 17일 1차 회의에서 결론을 유보한 가운데 오는 27일 2차 분과위에 다시 관련 안건을 상정하기로 해 한화오션의 개념설계 불법 인용 사실이 어떻게 다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화오션의 보안사고 혐의는 ‘2013년 KDDX 개념설계 보고서 원본 무단 생산 및 10년 간 무단 보관’과 ‘2020년 KDDX 기본설계 입찰 제안서에 비밀 무단 도용’ 등 2가지이다.

그런데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의 개념설계 불법보관 의혹과 관련한 방사청의 수사의뢰에 입건 전 조사를 통해 군사기밀보호법상 법적 구성 요건에 맞지 않고, 공소시효도 만료됐기 때문에 불입건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과위 결정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방첩사가 3개월 넘게 시간을 끌다가 ‘비밀 무단 보관’ 부분에 대해서만 수사 종결로 처리해 의구심을 낳았다. ‘개념설계 불법 인용’ 사건은 2024년 12월, 방사청이 민간위원들과 수사기관 관계자 입회 하에 이를 검증한 결과, 2020년 제안서 제출 당시 26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비밀 인용 사실이 확인돼 방산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최근 방사청이 국회에 보고한 ‘기본설계 제안서평가 관련 평가검증위원회 결과’와 2021년 1월 당시 ‘보안심사위원회 의결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2020년 9월 기본설계 제안서 평가 관련 방위사업청이 실시한 1·2차 평가검증위원회 평가 결과 보고서. HD현대중공업의 ‘KDDX 개념설계 보고서 불법 취득 후 기본설계 작성에 활용 의혹’ 보도에 따라 관련사실 확인 결과 HD현대중공업은 일치 내용이 없었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제안서 일부가 개념설계보고서와 동일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위사업청 제공
2020년 9월 기본설계 제안서 평가 관련 방위사업청이 실시한 1·2차 평가검증위원회 평가 결과 보고서. HD현대중공업의 ‘KDDX 개념설계 보고서 불법 취득 후 기본설계 작성에 활용 의혹’ 보도에 따라 관련사실 확인 결과 HD현대중공업은 일치 내용이 없었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제안서 일부가 개념설계보고서와 동일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방위사업청 제공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방사청이 개념설계보고서 활용여부를 검토했었고 그 결과 HD현대중공업은 제안서와 개념설계보고서 간 일치된 내용이 없었으나, 한화오션은 제안서(생존성 분야) 일부가 개념설계보고서와 동일한 것이 드러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방사청은 2021년 1월 방사청 A부장 주관 하에 보안심사위를 열어 관련 사안을 심의했으나 “해당 내용은 2012년 10월 작성된 개념설계 보고서(3급 비밀)와 동일함을 확인. 다만, 동 내용은 현시점에서 비밀로서의 수준은 상당히 낮다고 판단됐다(2021년 1월14일)”고 결정하면서 종결처리하고 그에 대한 행정조치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보안심사위에서는 비밀로서의 활용 가치에 대해 법적 판단 없이 임의 해석했고 무단 인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한화오션이 최근 언론에 제공한 입장문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화오션은 입장문에서 “당시 보안검증위원회(보안위)를 3회에 걸쳐 열어 확인한 결과, 한화오션의 기본설계 제안서에 개념설계 보고서에 포함된 이미지가 제안서에 반영된 것을 확인했지만, 2020년 기본설계 제안서 작성 시에는 기한이 많이 지난 데이터였고, KDDX 사업 연계상 충실한 제안서 작성을 위해 자체 검토하에 제안서에 반영됐다”며 “보안검증위원회도 일부 인용된 부분이 있다고 파악했지만, 최종 ‘문제없음’으로 결론 내렸다”고 해명했다. 한화오션이 이러한 입장을 어떤 근거로 작성했는지도 앞으로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한화오션의 입장은 지난 2024년 12월, 방사청이 민간위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한 ‘개념설계 무단인용’ 심의에서는 심각성이 지적됐던 것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 스스로 임원의 개입 사실을 밝힌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한화오션의 주장과 달리 군사 3급 비밀인 개념설계 보고서 도용 행위는 ‘군사기밀보호법’ 제13조 제1항에 의해 ‘계약상 열람할 권한이 없는 직원에게 누설한 것이므로, ‘업무상 군사기밀 누설’에 해당(3년 이상의 유기징역)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별도로 방위사업법 제62조 제3항에 따르면 ‘방산업체 임직원이 방위사업 관련 업무 수행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하는 경우에 해당(5년 이하의 징역)된다. 이에 대한 공소시효는 누설 행위는 10년, 도용 행위는 7년으로서 2020년 5월부터 7월쯤에 KDDX 기본설계 제안서가 작성된 것을 고려하면 공소시효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당시 보안심사위의 위원장을 맡았던 전직 방위사업청 고위 관계자가 공교롭게도 3년 뒤 한화오션으로 입사한 후 지금까지 근무 중인 것까지 드러남에 따라, 이것과 관련해서는 진상조사 또는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와 별개로 한화오션의 보안사고는 행정제재에도 해당된다. 구 방위사업법 제59조(시행 2020년 6월 4일 법률 제16671호) 시행규칙에서는 청렴서약 상 ‘계약이행과정에서 알게 된 연구성과물 등 특정정보를 임의로 제3자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지 않는다’는 내용과 관련, 한화오션 대표이사 명의로 기본설계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제안서에는 한화오션이 개념설계사업 계약이행 과정에서 알게 된 연구성과물을 임의로 제3자인 제안서 작성 직원에게 제공 또는 누설했으므로, 한화오션 대표이사의 청렴서약 위반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화오션 측은 “군사기밀보호법 제13조는 ‘타인에게 누설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 KDDX 개념설계 보고서는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이 수주해 직접 수행한 사업의 결과물”이었으며 “해당 내용들도 다름 아닌 ‘KDDX 기본설계 사업’ 제안을 위해 작성됐고 제출한 상대방도 타인이 아닌 이해관계자인 ‘방사청’이었다”고 말했다.

2021년 1월 보안심사위를 주관했던 A부장은 보안심사위 결정 직후 전역한 후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기간이 경과한 지난 2024년 4월경 한화오션에 임원으로 입사, 현재까지 한화오션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의혹을 사게 됐다. A부장이 한화오션에 임원으로 취업한 것은 직무행위와 취업기회 제공 사이에 대가성이 의심될 수 있고, 이는 ‘부정처사 후 수뢰’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한화오션에 입사한 이후 자신이 공직에 있을 때 담당한 국내 함정사업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것도 공직자윤리법상 ‘행위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볼 개연성도 있다.

그동안 한화오션은 2020년부터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이 ‘KDDX 개념설계 보고서’를 KDDX 기본설계 제안서에 활용했다고 주장하며, 국민감사청구, 국가수사본부 고발 등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국민감사청구는 기각됐고, 국수본도 불송치 처분된 바 있다.

이와 함께 최근 방산업계에서는 지난 2월, 보안사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업체가 울산급 배치(Batch)-Ⅱ 대구급 호위함의 엔진 연료 배관을 설계 도면과 달리 ‘이종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이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내려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KDDX 사업방식 결정을 앞두고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방위사업추진위원을 지낸 일부 인사들이 새롭게 드러난 보안사고 등에는 눈감은 채 일방적으로 관련 업체 입장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A씨가 해당 사안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렸던 시점은 HD현대가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추진 중이던 시기로, 한화와의 접점은 미약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A씨는 입사 당시, 현역에 근무했던 업무 등을 고려해 적법한 심사 과정을 거쳤다”며 “현재 근무 중인 사안에 대한 위법의 소지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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