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남자의 클래식 - 북스테후데 ‘파사칼리아’ D단조 작품 161
춤곡서 유래한 파사칼리아 장르
바로크 시대때 순수 기악으로
북스테후데의 대표 오르간 작품
D단조로 시작되는 어두운 선율
대위법 더해가며 밝아지는 특징
분주한 일상과 주변의 요란한 소음들에 치일 때, 고즈넉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 다시금 고요함에 귀 기울이며 차분히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히 가라앉은 산사의 공기 같은, 자유롭게 행복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같은 음악이 있다. 바로 바로크 음악의 거장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 D단조이다.
“나는 기분이 울적하면 피스토리우스에게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럴 때면 어두운 교회에서 내면 깊이 침잠해 마치 자기 자신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 같은 음악에 도취되었다. 가끔 오르간 연주가 끝난 후에도 우리들은 그대로 교회에 남아 저녁 빛이 높은 고딕풍의 창을 통해 들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북스테후데(1637~1707)는 후기 바로크 음악 시대(1680~1750)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교회음악과 오르간 연주의 거장이었다. 덴마크 출신인 그는 오르간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오르간과 음악 이론수업을 받았으며 21세가 되던 해인 1658년 성 마리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668년 북스테후데는 독일 뤼베크로 이주해 장크트 마리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위촉되었다.
토카타, 전주곡, 푸가, 샤콘, 코랄, 파사칼리아 등의 교회음악 작곡과 오르간 연주에도 출중했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고 어느덧 뤼베크란 도시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명실상부 독일 북부 음악의 메카가 될 정도였다. 북스테후데는 뤼베크의 장크트 마리아 교회에서 저녁 음악이란 의미의 ‘아벤트무지크(Abentmusik)’란 이름의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의 음악과 연주를 듣기 위해 방문하는 음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북스테후데를 만나기 위해 뤼베크를 찾았던 바흐의 얘기는 유명하다. 1705년 당시 20세의 청년 바흐는 오로지 북스테후데를 만나기 위한 집념 하나로 무려 400㎞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서 방문했다. 애초에 바흐는 한 달간 이곳에 머물며 그의 곁에서 음악을 배울 계획이었지만 북스테후데의 음악에 매료된 나머지 무려 넉 달간이나 뤼베크에 머물게 된다. 바흐의 재능과 열정에 탄복한 북스테후데는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나 하게 된다. 다름 아닌 자신의 뒤를 이어 뤼베크 장크트 마리아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어주길 청한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조건이 하나 따랐다. 다름 아닌 자신의 맏딸과 결혼하여 사위가 되어줄 것. 하지만 바흐는 이 훌륭한 제안을 거절하며 북스테후데와의 인연을 다하게 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하나 짐작 가는 것은 북스테후데가 부부의 연을 맺어주려 했던 맏딸의 나이가 바흐보다 무려 열 살이나 연상이었다는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파사칼리아’ D단조 작품 161은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오르간 작품이자 북스테후데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바흐의 작품 파사칼리아 C단조(1716~1723)에도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정확한 작곡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북스테후데의 만년 시기인 1690년대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의 전형인 반복되는 저음 선율이 펼쳐지며 그 위에 자유로운 변주가 이뤄진다. D단조로 시작되는 어두운 분위기의 선율은 대위법을 더해가며 차츰 밝게 변화하며 신비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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