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모합니다 - 고 박준구 우신켐텍 명예회장(1944∼2025) <하>하>
어느 해 8월 중순, 무척이나 더운 여름날 저녁. 아들 생일이라 축하 파티를 냉면으로 하기로 하고, 마포에 있는 유명 냉면집엘 식구들과 갔더랬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다 들어가 자리에 앉고 보니 좀 떨어진 곳에 낯익은 인사가 냉면을 들고 계셨다. 반가움에 틈새를 비집고 찾아가 잠깐 인사를 나눴다.
워낙 북새통이라, 나온 냉면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언뜻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일행은 벌써 자리를 뜬 후다. 우리는 등지고 앉은 위치라 볼 수 없었던 거였다. 식사 후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웬걸 “앞에 나가신 분이 다하고 가셨어요” 그런다. 순간 가족 앞에서 면구스럽게 된 건 아닌가 싶었으나, 정작 함께 있던 아들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멋진 선배님을 모시고 계시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빙긋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몇 해 전 그 추억이 떠올라 해묵은 감사 전화를 드렸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아들 녀석이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잘살고 있답니다.” “그랬던가요? 기억하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선하디선한 스타일 그대로였다.
그의 삶은 곧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일제의 막바지 침탈기에 태어나 광복과 독립, 분단과 6·25, 그리고 4·19, 5·16에 이어 군부독재와 문민시대를 거쳐 마침내 이 땅에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이룩하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역사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의 발자취다.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일제의 징집을 피해 경북 봉화의 오지로 이주하면서 산나물과 버섯을 따며 생계를 이어가는 빈농의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학업의 뜻을 굽히지 않아 안동의 안동사범중학교를 진학한 후 다시 홀로 상경해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민족사학의 교육이념에 이끌려 고려대 철학과에서 청년의 꿈을 키워온 그였다. 결국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알찬 기업을 적수공권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시대의 격랑을 헤쳐오면서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성실하게 국가와 민족, 사회와 이웃, 미래를 짊어질 새 세대를 위해 혼신의 노력과 정성을 다해온 그의 여든 한 해 삶. 모르긴 해도 그에겐 아직 갈증이 더 남아 있었으리라. 평화롭고, 정이 넘치고, 문화가 춤추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 마지막까지도 본인이 무언가 더 할 바를 숙고했을 것이다.
그가 잡지 ‘고대 TODAY’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 “기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요? 극빈 가정은 아니었지만 저 역시 꽤 어려웠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회에 신세를 진 만큼 갚는 것이고 이로 인해 느낀 보람은 저의 행복입니다.”
그의 고귀한 뜻은 그렇게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박준구 선배님. 이제 오랜 병고에서 벗어나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후배 이강식(전 리얼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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