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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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수전 매그새먼·아이비 로스 지음│허형은 옮김│윌북

예술적 감수성은 내재 감각
새 자극 찾는 것은 인간 본능
트라우마 극복·통증 완화 등
심리적 영역서도 치료 효과

뇌 전문가가 분석한 신경미학
‘예술의 과학적 증거’ 보여줘


예술의 쓸모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묻는다. 과거 예술은 인간 경험의 중심이었고 인류 역사 속에 혁명과 문화적 변혁의 불씨가 되었다. 벽화와 조각, 음악과 문학은 그 시대의 감정과 질서를 고스란히 품고, 오늘의 우리에게 과거를 읽어낼 지침서가 되어줬다. 오늘날에 들어서는 조금 더 실질적인 효용을 기대한다. 아이들의 정서발달, 창의력 증진, 현대인의 스트레스 완화와 같은 구체적 효과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직접적인 쓸모, 분노를 잠재우고 신체 에너지를 조절하고 불안감을 덜어주기도 하는 예술의 과학적 증거를 보여준다.

예술의 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의 몸이 예술을 추구하도록 설계됐다면 어떨까. 책은 예술과 미학이 활성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 신경회로, 신경망을 통해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 창작하고 향유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 가운데 존스홉킨스대의 뇌과학자인 수전 매그새먼은 이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다. ‘신경미학’ 혹은 ‘신경예술’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예술이 가진 힘을 이해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연구하는 분야다. 매그새먼은 구글 글라스를 만든 구글의 디자인 부총괄 아이비 로스와 함께 예술과 과학 분야의 융합이 만들어낸 이 학문의 성과를 보여준다.

인간의 감각만 들여다봐도 우리가 왜 예술을 찾는지 짐작할 수 있다. 후각은 1조 가지의 냄새를 구별하고, 미각은 만 개 이상의 미뢰를 통해 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청각은 수천 개의 유모세포로 소리를 포착하고, 촉각은 발 하나에만 70만 개 이상의 신경종말을 가진다. 감각은 빠르다. 청각은 3밀리세컨드, 촉각은 50밀리세컨드 안에 뇌에 도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섬세하고,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태어났다. 예술을 만들고 즐기기 위해 요구되는 감수성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감각의 결과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를 약처럼 처방했고, 현대에 들어서도 대통령 취임식이나 국가적 장례식에서 시 낭송은 정서적 안정의 장치로 등장한다. 이처럼 예술의 전 분야는 인간의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시를 들을 때 사람들의 뇌는 보상과 감정에 관여하는 영역이 활성화되고, 절정의 감정 반응인 소름과 오한이 관찰된다. 향기는 후각 피질이 감정과 기억 전반에 작용하는 측두엽에 자리해 있어 즉각적이고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유발한다. 소리는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데 탁월하다. 특정 주파의 소리는 무의식적 자각 속에서 뇌의 진동을 바꾸고, 말 그대로 몸의 리듬을 재조정한다.

트라우마 치료에도 예술은 큰 효과를 보인다. 트라우마의 특징은 극도의 몰입과 위급함인데, 일상적 언어로는 이를 해소할 수 없다. 하지만 미술 작업과 같은 예술 활동은 뇌를 ‘저가동 모드’로 전환시키고, 평소 과활성화된 트라우마 회로를 잠시 꺼둘 수 있게 한다. 더욱 실질적인 고통, 즉 통증에도 예술은 작용한다. 통증은 아직도 의료계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다. 의학적으로 통증은 누구나 겪지만 신체에서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고 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어 ‘1부터 10까지 얼마나 아픈가’라는 질문으로 통증의 정도를 파악한다. 이는 통증이 신체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반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통증은 예술을 통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데, 춤을 추거나 자기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것만으로도 만성 통증을 잊을 수 있다.

새로운 가능성도 열려 있다. 감각의 총동원은 오늘날 예술의 새로운 키워드다.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은 2016년 ‘테이트 센서리움’ 전시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감상하며 숯, 바다소금, 스모키한 차 맛이 나는 초콜릿을 시식하게 했다. 존 레이섬의 작품 앞에서는 소리, 진동, 공중의 햅틱 장치가 움직임의 감각을 자극했다. 최신 기술은 감각의 외연을 더욱 넓힌다. 가상현실(VR)은 몰입감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은 개인의 감정 상태에 맞춘 감상 환경을 설계한다.

사회가 날이 갈수록 혼란스럽고 뉴스는 연일 우울한 소식을 전한다. 다른 때라면 진부하게 들렸을 ‘예술이 위안을 준다’는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엄중한 시국 속에 책을 읽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음악을 듣는 일이 두려운 이들에게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작품 속 한 구절을 전한다. “부수어져 활짝 열렸다면 춤을 추라. 붕대를 풀어버렸으면 춤을 추라. 싸우는 와중에 춤을 추라. 너의 피에서 춤을 추라. 완벽히 자유로워졌으면 춤을 추라.” 미술관에 가자. 음악을 듣자. 춤을 추자. 우리 뇌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368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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