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 기록자
사이토 마사히코 지음│조지혜 옮김│글항아리


책은 1924년에 태어나 2011년 87세로 세상을 떠난 일본 여성 사이토 레이코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쓴 일기로 구성돼 있다. 그가 남긴 일기를 다시 읽으며 책으로 펴낸 저자는 그의 아들이자 정신과 의사로, 노인 인지증(알츠하이머) 전문의다.

레이코는 2008년부터 알츠하이머가 발병해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어머니의 일기가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단순 기록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노년의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가 수십 년에 달하는 일기 중 어머니가 67세였던 1991년에서 책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해에 처음으로 일기 속에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고백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은 네 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67세부터 75세까지 가장 긴 시간대를 다룬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 레이코는 평생의 취미였던 단카(短歌·31글자로 지은 일본 전통시)를 책으로 묶고 스페인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삶의 통제권을 만끽하려는 레이코의 생각과 달리 2기와 3기에 해당하는 일기에는 기억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하려는 발버둥이 매우 사실적으로 적혀 있다.

요양원에 들어간 뒤의 시간을 다룬 4기는 일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공백이 많은 단편적 메모들로 구성됐다. 자신의 생활을 통제할 수 없을 때조차 레이코는 잠에서 깨어나 불안에 몸부림치며 메모를 남겼다. 모든 기록을 통해 저자는 의료계와 사회가 알츠하이머 환자의 주관적 고통에 대해 얼마나 무감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328쪽, 1만8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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