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무례한 미국 우선주의
■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멜로스 탐낸 아테네
속국되라 압박하며
“강자 지배는 신의 뜻
생존하려면 저항말라”
트럼프 힘의 논리 등
‘야만’ 비추는 거울로

기원전 416년, 그들은 스파르타 동쪽 멜로스 섬을 겨냥했다. 멜로스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아테네는 그들을 탐냈다. 군대를 몰고 멜로스 섬으로 가서 자신들이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에 들어와 속국이 되라고 압박했다. 멜로스인들은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힘으로 강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대꾸했다. “인간관계에서 정의는 힘이 대등할 때 통하는 것이오.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추진하면, 약자는 그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소?” 아테네인들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며, 신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된 ‘멜로스의 대화’ 논지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으로 메아리치며, 그 메아리는 지금도 여전히 쟁쟁하다. ‘미국 우선주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기치를 내걸고 47대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다. 캐나다에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는 식으로 엄포를 놓고,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팔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트럼프가 보인 태도에는 호의와 배려, 정중함은 없었다. 무기 지원을 끊겠다는 식으로 압박하는 모습은 그 옛날 멜로스를 협박하는 아테네의 태도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세우는 주장이 한 국가 안에서나 국제관계에서 표준적인 기준과 법규, 제도가 된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정의이며 그것에 저항하고 위반하는 것이 부정의라면, 트라시마코스의 주장대로 정의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강자의 이익을 위한 수단과 명분이 된다. 그것이 통하는 세상에서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지키려면 강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강자가 될 수는 없으며,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굴욕스럽고 억울하지만, 강자의 논리에 순응하며, 체면이 좀 구겨지더라도 일단 생존을 지켜나가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아테네인들은 비릿하게 말했다. “멜로스인들이여,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니, 체면을 세운다든가 치욕을 면하는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생존을 위해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에게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멜로스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단호하게 반발했다. “우리는 우리가 700년을 살아온 이 도시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저항했다. 그 끝은 참혹했다. 아테네인들은 멜로스의 성인 남자들을 다 죽였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넘겼다. 몰살로 텅 빈 멜로스에는 아테네인 500명이 이주해 식민지를 만들었다.
‘멜로스의 대화’는 과거의 기록으로 역사 속에 묻혀 있지 않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야만적 사태를 비추는 거울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미국의 행태 속에서뿐만 아니라, 법과 정의의 논리보다는 힘의 논리로 팽팽하게 대결하는 우리 국내 문제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누가 더 옳은가의 문제보다 누가 더 힘이 센가에 정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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