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영웅인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28일 서해수호의날(3월 넷째 주 금요일)을 맞아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갖기위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1대1 복원 모형)을 지나면서 걸어오고 있다.   백동현 기자
제2연평해전 영웅인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이 28일 서해수호의날(3월 넷째 주 금요일)을 맞아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갖기위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참수리 357호정(1대1 복원 모형)을 지나면서 걸어오고 있다. 백동현 기자


■ 데스크가 만난 사람 -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

Q. 오늘 서해수호의 날… 제2연평해전 용사로서 소회

NLL사수 전투로 오른발 잃고
참수리 357호 전우 6명 희생

北도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데
정치권 통합 아닌 분열 안타까워

나라에 헌신한 유공자에 힘되려
고민 끝에 보훈부 차관직 맡아

한국전쟁 참전국 중심 보훈외교
독립 지원 외국인 서훈 등 확대


인터뷰 = 이제교 부국장 jklee@munhwa.com

시작은 늘 같다. 누구 아들과 딸이 군대에 갔고, 누구는 허리가 아프고, 술잔이 돌다가 한 사람 두 사람, 눈빛이 퀭해진다. 그때 총탄을 더 퍼부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윤 정장님이, 한 상사가, 박 병장이 죽지 않았을 텐데…. 순간 정적이 흐르고 참수리 357호, 모두는 그날의 바다로 빠져든다. 그리고 꺼이꺼이 운다. 23년이 흘렀지만 언제나 같다.

3월 28일은 서해수호의 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향방으로 어수선하지만 국가는 용사들의 고결한 희생이 쌓아져 존재한다. 제2연평해전 당시 한쪽 다리를 잃은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참수리 357호 전우들과 자주 만나나요.

“당연하죠. 매년 6월 6일 현충일과 6월 29일 제2연평해전 전승일, 9월 28일 한국전쟁 서울수복기념일에 정기모임을 가집니다. 승조원이 27명이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에서 윤영하 정장님을 비롯한 6명의 전우가 희생됐고 21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만나면 늘 같습니다. 근황을 묻다가, 당시를 회상하고, 결국 눈물바다가 되지요.”

―당시 큰 부상을 입었는데.

“오른발이 의족입니다. 북한이 쏜 총탄으로 오른발을 잃었습니다.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너덜너덜했지요. 3개월에 걸친 큰 수술을 받았고, 허리 부분에서 뼈를 떼 내 이식했습니다. 지금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부자연스럽지요. 하지만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가 생긴 일인 만큼 후회는 없습니다.”

―제2연평해전 의미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전투임에도 처음 6년간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을 뜻하는 ‘서해교전’으로 명명되다가 2008년에야 ‘NLL 사수라는 명확한 작전목표를 갖고 해상에서 벌어진 전투’를 뜻하는 ‘제2연평해전’으로 변경됐습니다. 우연한 충돌이 아니라 북한의 계획된 도발에 맞서 해군이 대한민국 바다를 지켜낸 전투임을 비로소 인정받은 것이지요. 해군 제2함대 주관으로 치러졌던 추모행사도 정부 주관으로 격상됐습니다.”

―차관 취임 1년여가 됩니다.

“벌써 1년 3개월, 469일이 됐네요. 당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전화가 와서 의향을 물어보더군요. 한쪽 다리를 잃고 지상근무를 하면서도 제복을 벗는다는 생각을 그때까지는 전혀 하지 못했었지요.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하지 마라. 너는 군인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다음 날 새벽 6시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해 뜨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이 차관은 지상 근무 후 23년째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을 딛고 옥상을 올라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스리 스타급 자리인데, 우리 참수리 357호 전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영웅으로 기억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지금도 초심에 대한 답을 찾아 무엇을 할지 고민합니다. 250만 보훈가족의 명예와 권익을 위해 국회를 방문해 정책을 설명하고, 유공자분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政治)’가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는지 회의를 갖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좌우가 너무 갈라져 있습니다. 분열의 간극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진영별로 나뉘어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이런 현실을 초래하게 만들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여야가 제대로 소통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아 다스리지만 자기 자신과 소속 진영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서로 내 것만 고집합니다.”

이희완 보훈부 차관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참수리 357호정 앞에서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잃은 오른쪽 다리의 의족을 보여주면서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이희완 보훈부 차관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참수리 357호정 앞에서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잃은 오른쪽 다리의 의족을 보여주면서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 대한 근심이 느껴집니다.

“국론 분열을 없애고 통합을 이뤄 모두가 희망을 갖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의 멈춤과 대립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잠시 휴전 중인 상태일 뿐이지요. 언제든 북한의 군사도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북한에 대해 왜 그렇게 우호적인 태도를 갖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다만 그 문을 닫고 안 닫는지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2월 28일 고 조천형 상사의 딸인 시은 양이 해군 소위로 임관했는데요.

“제2연평해전 발발 열흘 전이었지요. 조 상사는 시은 양 백일에 참수리 357호 전우들을 초대했습니다. 모두 가서 축하해 줬는데 시은 양에게는 그날이 아버지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해군 장교가 돼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킨 바다를 수호하겠다는 시은 양을 보니 너무 가슴이 벅차고 대견스럽습니다. 조 상사도 하늘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시은 양은 우리 모두의 딸입니다.”

―이번 서해수호의 날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으로 희생된 55용사를 추모하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북돋우며, 국토수호 결의를 다지고자 2016년 제정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에 기념식이 열립니다. 올해 국립대전현충원 기념식에 유족과 참전장병 등 1500명이 참석합니다. 서해수호 3개 사건을 의미하는 3개의 영웅의 빛, 기억의 빛, 약속의 빛 기둥이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매일 20시부터 55분간 55개의 종이등과 함께 청계천에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집니다.”

―2029년 인빅터스 게임 대전유치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인빅터스 게임은 영국의 해리 왕자가 2014년 창설한 전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입니다. 인빅터스 게임은 첫째,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둘째, 상이군경 선수들이 가진 불굴의 정신과 가치들은 보편적인 공감을 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을 딛고 일어난 우리의 역사는 불굴의 의지로 한계에 도전하는 인빅터스 게임의 취지와 맞습니다. 상이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보훈문화 확산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첨단로봇 등 보철구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지난 2월 2025년 인빅터스 게임이 열린 캐나다 밴쿠버에서 해리 왕자를 만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보훈부의 주요정책 중 하나가 보훈외교인데요.

“우리의 보훈외교가 한국전쟁을 매개로 하는 유엔참전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부터 독립운동 지원국으로 적극적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독립을 지원한 외국인에 대한 서훈 작업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보훈외교의 기반이 1900년대로 확장되면 한국 공공외교의 폭과 역사가 깊고 넓어질 것입니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국제사회에 퍼져가면 국격도 올라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예우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유공자분들 스스로도 예우에 걸맞게 행동하면서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는 보훈부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전쟁을 잊으면 위기가 온다’는 말처럼, 국가수호에 대한 국민의 마음이 모여야 안보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전우들을 항상 마음속에 안고 의연하게 앞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1976년 경북 김천 △울산 성신고 △해군사관학교 54기 △제2연평해전 참전, 충무무공훈장 수훈 △서울대 대학원 심리학 석사 △해군사관학교 심리학 교수 △해군본부 교육정책담당 △대한민국 해군 대령 예편

■ 용어 설명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북방한계선(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벌어진 남북 간의 해전.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시작됐으며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가 대응사격을 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상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희생됐고 북한군도 함장 김영식 대위를 포함해 13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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