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소설가들 삶 얘기에 감동 영혼 담아 필생의 작품 빚어낸 구도자들 인생에 경외와 존경심
인생을 한 줄, 또는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비교’를 빼놓기 힘들 것이다. 남들에게 비교당하기도, 스스로 비교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가장 가까운 비교 대상은 형제들이 아닐까. 나는 자라면서 두 명의 남동생과 외모 비교를 많이 당했다. 어찌 된 셈인지 두 녀석이 지나치게 ‘예뻐서’ 수난 아닌 수난을 감내해야 했다. 여드름 폭탄까지 맞아 잔뜩 위축되었던 20대 때, 남동생과 내가 남매라는 사실을 안 교회 오빠로부터 “친동생 맞아?”라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 말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던 나는 동생들로 인해 ‘외모로 승부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자각했다.
어릴 때의 기개가 다 사라진 20대 끝단, 뭇별 같은 작가를 배출한 데다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강의하는 학과에 발을 들이밀었다. 위대한 선배들의 전설이 떠다니는 학교에 함께 입성한 동기들은 대개 고교 문예 공모에서 상을 받은 문재들이었다.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한 작가까지 입학해 절로 겸손해져 학교를 오가고 있던 때 군 복무 중인 선배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학 생활 내내 천재 집단에 잘못 끼어든 게 아닌가, 좌절하느라 마음이 산란했다.
빨리 등단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그 시절 우리의 소망이었다. 나중에 시인이 된 친구가 독설가로 유명한 교수님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하고 묻자 “글은 재능이 쓴다. 단언컨대 너희들 중 95%는 고급 독자로 머물 거다”라고 일갈하셨다. 그 교수님이 “너 등단 못 해”라고 한 학생은 거의 등단했다는 속설이 떠다니고 있어 그다지 낙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능성이 보이면 못 쓴다고 핀잔을 주어 분발하게 만드는 게 그 교수님의 전술이었다.
그래서 소설 쓰는 동기들이 교수님께 “저 등단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본 뒤 “너 등단 못 해” 하면 오히려 안심하곤 했다. 어느 날 나도 “교수님 저 등단할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쭸더니 “그래, 너 등단할 수 있어”라고 해서 절망했는데, 졸업 후 3년 만에 등단을 하긴 했다.
작가가 되고 나면 공식적인 비교가 시작된다. 독설가 교수님이 “등단작이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된 사람 많다”고 한 대열에 끼기라도 할 듯 소설은 제쳐놓고 분주하던 때도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일은 계속됐다. 독설가 교수의 제자답게 독설만 늘어난 동기들과 졸업 후에도 종종 만났는데, 듣기 괴로울 정도로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깎아내리느라 바빴다. 특히, 베스트셀러 작품을 난도질하다 보면 밤이 하얗게 바래곤 했다. 겨우 등단만 했거나 여전히 도전 중이면서 문학상 심사위원장이라도 된 듯 비교를 거듭하며 한풀이를 해댔다.
기자로 일하다가 프리랜서로 나서 다양한 글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 소설가 인터뷰 요청이 오면 무조건 거절했다. 사석에서 동기들과 난도질한 잘나가는 작가를 만나 질문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가 운영했던 ‘BESTSELLER’(베스트셀러)라는 문예잡지에서 소설가 릴레이 인터뷰를 의뢰해 왔다. 최고의 소설가들을 충분히 인터뷰해서 마음껏 쓰라는 말에 수락하고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15명의 소설가를 차례로 만났다.
1년 넘게 최정상 소설가들의 얘기를 들으며 비로소 ‘비교’에서 자유로워졌다. 조급함과 시기심, 열패감에 떠밀려 비교하고 비평했던 그분들이 ‘비교 불가’의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확인한 덕분이다. 스스로를 세상과 유리시킨 환경에서 온 힘을 다해 작품을 빚어낸 구도자의 삶에 경외심과 존경심이 일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죽을 각오로 전업작가의 길을 들어서서 영혼이 피폐해질 만큼 전념하여 필생의 작품을 만난 분들이었다. ‘소설가들은 집을 떠나 소설을 쓴다, 소설 쓰는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주로 밤에 쓴다’는 등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잘 웃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웃더라도 끝내 서글픔이 배어 나오는 독특성이 있었다. ‘해맑은 웃음’ 같은 좋은 재료를 작품 속에 다 쏟아부어 그럴 거라 단정하며 반성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편안해졌다.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는 일은 영혼을 쏟아부은 뒤에나 할 자격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소설가 인터뷰도 하고 서평도 줄기차게 쓰고 있다. 그리고 누구와 비교할 필요 없이 나의 성정과 잘 맞는 밝고 유쾌한 소설 쓰기를 선택해 가뿐하게 사는 중이다.
지난주, 서평할 책을 고른 뒤 자료를 찾는데 그 작가와 관련된 몇몇 작가의 삶이 저절로 떠올랐다. 알고 있었지만, 눈부신 시를 쓰던 시인이 작고한 사실에 새삼 마음이 아려 왔다. 그러다 대학원을 함께 다닌 시인의 출가 기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몇 년 전의 일인데 이제야 그 일을 알게 되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비교하느라 분주한 속세가 고달팠을까, 더 깊이 있는 시를 퍼 올리기 위해 떠났을까. 깨달음의 경지 앞에 순복한 걸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사실 인생도 길다. 예술을 꽃피울 기간이 짧을 뿐. 오랜 준비 끝에 건져 올린 예술이 인류에게 길게 영향 미치길 누구든 기대한다. 비교당하고, 비교하면서 성장해온 삶이 고맙다. 모쪼록 고달픈 예술의 길에 뛰어든 친구들이 비교할 필요 없는, 그저 나만의 작품을 잘 빚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