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문학과 다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법원 앞에서 도열한 채 대표를 기다렸던 민주당 의원 60여 명은 판결에 환호했고, 더러는 지지자들과 껴안으며 감격했다. 이 대표의 최대 ‘사법리스크’가 해소돼 대선 주자로서 날개를 단 격이란 기사가 쏟아졌다. 정말 모든 것이 말끔해진 걸까. 이 대표는 사필귀정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 대표는 여전히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의 피고인이다. 그런데 한 친명(친이재명)계 의원은 “이제 1%의 위험성도 사라졌다”며 “이 대표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나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유죄 선고를 받지 않았으니 대권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논리는 어딘가 개운치 않다. 그렇지만 민주당 대다수는 그렇게 여긴다.
일반인이라면 재판 5개가 줄줄이 대기 중인데, 유죄 선고를 받았던 재판 하나가 무죄로 바뀌었다고, 곧바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기 힘들다. 물론 일반인이라면 검찰의 표적 수사로 수난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이라면 먼지 털듯 수사받더라도 이 대표만큼 그 많은 재판에 세워지기 힘들다. 항소심 재판에서도 이 대표가 했던 문제 발언의 존부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유죄를 단정할 수 없다고 했을 뿐이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도 수치를 느끼는 역치가 보통과 다른 것 같다. 자신의 탄핵을 둘러싸고 국가가 흔들리고, 국민의 마음이 분열되고, 주말마다 서울 시내가 두 쪽 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지지자들에게만 위로를 건넸을 뿐이다. 나라와 국민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상식이고, 보통의 도덕적 눈높이다.
‘주홍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장편 ‘대리석 목양신’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는 완전히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의 양심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혹한 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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