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900년 매킨리 따라 하기 ‘관세↑=재정수입↑’ 판박이 논리 성장 하락·물가 상승 부작용 외면
美 3월 소비자물가지수 변곡점 제조업 위해 소비자 희생 논란 한국, 시범 케이스 되지 말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데날리(원주민어로 ‘높은 곳’)로 바꾸었던 알래스카 최고봉 이름을 다시 매킨리로 돌려놓았다. 그만큼 윌리엄 매킨리(1897∼1901년 재임) 제25대 대통령을 우상으로 존경한다. 공화당 소속이던 매킨리는 파나마 운하의 초석을 놓았고, 하와이를 점령했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을 차지했다. 미 영토를 확장한 마지막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다시 파나마 운하를 차지하려 한다. 관세 집착도 매킨리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매킨리는 평균 관세를 46%로 올린 딩글리법을 만들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시작되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내렸다. 근원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8%로 올렸다. ‘경제학 원론’의 저자인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트럼프의 무역 정책은 단기적 고통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더 큰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관세 인상이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딴소리를 한다.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우기며 “2년 안에 상호관세로 1조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 큰소리친다. “관세 인상은 국내 세금을 올리지 않고 정부 수입을 늘리는 묘수”라고 한 매킨리의 발언과 닮은꼴이다.
정치가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마법으로 자주 관세를 동원한다. 정치적 선동의 결과는 참혹하다. 매킨리는 관세를 46%로 올렸지만, 관세 수입은 4% 감소했다. 당시 관세는 미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미 공화당의 뿌리 깊은 고율 관세 전통은 결국 1930년 59% 관세율의 스무트-홀리법으로 이어져 대공황을 불렀다. 그나마 매킨리의 관세 재앙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 경제가 성장한 것은 전기시대 개막, 철도망 확충 등 같은 획기적 기술 혁신 덕분이었다. 지금 미국의 관세는 재정 수입의 1.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125년 전같이 관세를 요술 방망이처럼 휘두르고 있다.
시장의 역습도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에 따른 환호와 열광은 싸늘하게 식었다. 미국 증시와 비트코인은 트럼프 랠리에 따른 상승분을 모두 토해냈다. 나스닥 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강행을 꺼내면 2% 넘게 폭락하고 관세 유연성을 시사하면 2% 이상 폭등하는 널뛰기 장세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 시장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성장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관세를 영구적이 아니라 협상 수단으로 일시적으로 올린다면 인플레 압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일시적인 협상 수단에 그쳐야 한다는 주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보다 우방이 더 나빴다”며 “그들이 어떻게 이 나라를 약탈했는지 보라”고 했다.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출발한 관세 전쟁이 무차별적인 세계 대전으로 번지고 있다. 그 단기적 운명은 4월 13일 발표될 3월 미 소비자물가지수에 달렸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8% 오르는 데 그쳐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하지만 3월 소비자신뢰지수부터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낮은 92.29로 내려앉은 것은 불길한 징조다. 만약 관세 인상으로 3월 소비자물가지수가 3% 위로 치솟으면 분위기는 급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제조업 종사자 1300만 명을 위해 소비자 3억 명이 비싼 물가를 감당하는 게 맞느냐는 반발에 부닥칠지 모른다. ‘관세 인상=자해 행위’라는 정치적 역풍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할 수 있다. 트럼프는 지지율 변화에 민감하다.
관세 전쟁은 낡은 프레임이고 매킨리의 딩글리법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도 미 내부 부메랑에 직면하고, 캐나다·멕시코·중국·유럽연합(EU) 등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언제 미국이 세계적 외톨이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게 치명적 약점이다.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의 시범 케이스엔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동맹국일수록 본보기로 더 아프게 때린다. ‘더티 15’ 같은 살생부가 난무하지만, 협상 카드는 최대한 끝까지 숨길 필요가 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미는 청구서의 비용과 희생이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