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무역대표부 “韓, 국방 절충교역으로 국내 제품 우선” 첫 언급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협상용 카드 추정…“급한 건 미국” 주장도
미국 전세계 28개국과 RDP-A 체결…주요 방산 15개국 중 RDP-A 미체결국 한국 유일
미국 이지스함 수주 입찰 경쟁 때 RDP-A 체결국 일본 BAA 면제 가격경쟁력 불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외국 무기를 들여올 때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교역 형태인 ‘절충교역’이 무역 장벽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전 세계 공통의 무기 거래 관행으로 어느 나라든 관례적으로 실시하는 절충교역을 미국이 걸고넘어지는 것은 한국과 미국이 진행 중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 또는 RDP-MOU)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협상 전술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무역장벽으로 국방부의 ‘절충교역’을 처음 지적하고 나선 것은, 미국 방산업체들의 한국에 대한 무기 수출 시 기술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미 간 추진 중인 RDP-A 체결 관련 자국 방산업체를 보호하고 급성장세의 K-방산에 태클을 걸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31일(현지시간)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는 국방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사실상 시정을 요구했다.
절충교역은 외국의 무기·장비 등을 구매할 때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관련 지식·기술을 이전받거나 상대방에게 자국산 무기·장비·부품 등을 수출하는 식으로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 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교역이다. 한국은 미화 1000만 달러(약 147억 원) 이상의 사업에 적용하는 게 원칙이다.
한국은 1982년 절충교역 제도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T-50 고등훈련기 공동 개발, 재래식 잠수함 자체 개발 능력 등을 확보하며 K-방산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항공통제기 2차 사업, 이동형 장거리 레이더, KDDX 구축함 사업, F-35A 및 F-15K 성능개량, 공중급유기 2차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이 절충교역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미국 무기체계 도입 시 합의각서를 체결해 이행 관리 중인 절충교역 사업규모는 57억 7900만달러 (약8조5000억 원)에 이른다. 현재 우리의 절충교역 법적 비율은 국외구매계약금액 대비 수의계약의 경우 30%, 경쟁계약의 경우 50%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절충교역 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어느 나라든 무기 도입 시 절충교역 및 산업협력 제도를 두고 있는 점을 감안, 업체에 ‘핸즈 오프(hands off·불간섭주의)’ 정책을 유지해왔다.

이 정도 수준의 절충교역은 세계적으로 볼 때 높은 비율이 아니라는 것이 방산 당국·업계 등의 평가다. 방위산업 전문가인 박태준(예비역 육군 대령) HD현대중공업 비상계획관은 “지난 해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 연구보고서는 RDP 프로그램 모니터링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트럼프 정부 들어 K-방산에 대한 견제 및 우려 등으로 인해 절충교역을 한미 무역장벽으로 지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2023년 방사청 통계연보는 국외구매의 78%(약 12조 원)를 미국에서 구매했음에도 절충교역으로 인한 효과는 전체의 23.4%에 불과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미흡한 실정임에도 불구, 미 정부가 이를 무역장벽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최근 K-방산의 성장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로부터 해외 구매금액의 3.4%(약 5253억원)를 구매했으나, 절충교역은 전체의 22.6%를 확보해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는 영국,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미국 일변도의 구매에서 유럽 등 구매선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미국은 우리의 절충교역제도와 유사한 제도인 ‘미국산 우선구매법(BAA·Buy American Act)’에 따라 미국산이 아닌 경우 차별적인 추가비용(50%)을 부과함으로써 외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현재 28개국과 RDP-A를 체결하고 있는데, 이중 22개국과는 절충교역이 미치는 부작용을 제한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데 동의하는 수준으로 협의했기에 우리도 동일 수준으로 체결될 것을 기대했다.
유럽 국가들은 100%에 육박하는 절충교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고, 미국은 BAA를 통해 미국산 원자재가 65% 이상 사용되어야 가격 할증 적용이 제외되도록 해 절충교역과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했다.
미국의 BAA는 미국산이 아닌 경우 차별적인 추가비용(50%)을 부과함으로써 외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즉 미국산 부품을 60%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경우 100만 원에 50%를 부과해 150만 원에 팔도록 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산 부품 60% 이상 사용 비율은 2024년에 65%, 2029년에는 75%로 상향될 예정이다.
박 비상계획관은 “RDP를 체결한 국가에게는 이러한 BAA 적용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며 “ 따라서 한국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RDP를 체결하지 않고서는 가격경쟁력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수출이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방산수입의 90.2%를 미국과 RDP를 체결한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2019~2023년’간 대미 방산수출실적을 살펴보면 미국에 주요 방산수출 16개국 중에서 영국 등 12개국은 RDP를 체결한 국가들로서 이들이 미국수입의 약 90.2%를 차지하고 있다.
BAA가 요구하는 미국산 원자재 비율은 2029년 75%로 강화될 예정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은 절충교역의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산업연구원 장원준·박혜지 연구원이 2023년 쓴 ‘글로벌 방산 수출 4대 강국 진입을 위한 K-방산 절충교역의 최근 동향과 발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획득한 절충교역 가치는 2011∼2015년 79억9000만 달러였다가 2016∼2020년 8억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USTR이 한국의 절충교역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이 보고서는 오히려 한국의 절충교역 감소 경향이 주요국의 활성화 추세와 불일치하는 점, 세계 130여개 국이 절충교역 제도를 활용하는 점 등을 들어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절충교역을 꺼내 든 것은 결국 추후 한국과의 군수 관련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미리 마련해두기 위한 트럼프식 거래 전술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은 국방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 불리는 국방상호조달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2022년 양국 정상 간 합의해 현재 진행 중이다. 세계 주요 방산 15개 국가 중 미국과 RDP-A를 체결하지 않은 주요우방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국방상호조달협정은 체결국 상호 간 조달 제품 수출 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취지의 협정이다. 미국이 자국 방산업계 보호를 위해 적용하는 BAA가 상호군수조달협정 체결국에는 예외가 돼, 한국 무기가 미국산으로 인정받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미국이 최근 함정 조달과 유지·보수·정비(MRO)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RDP-A 적용이 필요한 것은 현재로서는 미국이며, RDP 협상을 조금 더 유리한 형국으로 끌어가고자 절충교역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절충교역을 담당하는 방위사업청은 “대부분 국가는 국방획득 과정에서 절충교역 또는 산업 협력을 요구한다”며 “한국과 미국 정부는 국방획득 장벽 완화를 위해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RDP 체결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국방부 태스크포스를 통해 미국과 RDP-A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이 절충교역 관련 조항에 제동을 걸면서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박 비상계획관은 “우리 입장에서는 RDP-A를 미국과 빨리 체결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글로벌 방산 시장으로 영역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협력을 거론한 함정 건조사업의 경우 앞으로 미국이 함정 수주를 본격적으로 할 경우 RDP-A 체결 국가가 가격경쟁력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 함정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지스 구축함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이 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인데 일본은 RDP-A 체결국가이고 우리나라는 미체결국가이기 때문에 일본과 입찰 경쟁하면 가격경쟁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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