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싹 속았수다’ 두 시절의 관식… 박보검·박해준

겉으로는 무뚝뚝해도
약자 보호하는 아버지 그려
캐릭터 위해 4~5㎏ 증량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의 아버지 관식은 ‘무쇠’다. 좀처럼 닳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다. 가족들이 든든히 기대는 버팀목, 강인한 쇠다. 하지만 세월은 무쇠마저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도 가족을 향하는 마음만은 티끌만큼도 줄지 않는다. 청년 관식을 일군 배우 박보검, 중년 관식을 빚은 배우 박해준이 말하는 관식의 삶을 들어봤다.

청년 관식의 인생은 직진이다. 열한 살 나이 때부터 애순(아이유) 곁을 든든히 지켰고, 과감한 사랑의 도피 끝에 열아홉에 딸 금명을 얻고 아빠가 됐다. 기존 박보검의 이미지에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묵묵히 일터로 향하는 얼굴 까만 제주 청년 관식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하지만 “듬직해 보이면 좋겠다”는 말에 덩치를 키운 박보검은 진짜 관식이 되어갔다.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박보검은 “가만히 있어도 무게감이 잘 표현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는데 쉽지 않더라. 그래서 많이 먹고 운동도 꾸준히 해서 4∼5㎏가량 증량했다”면서 “관식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도 신경 썼다. 평소 관식은 표정이 다양하지 않지만, 가족에게만큼은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애순을 졸졸 쫓는 그는 영락없는 팔불출이다. 하지만 애순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남편이고, 금명에게는 태산같이 높고 튼튼한 기둥이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쓴 임상춘 작가를 ‘씨앗 저장소’라 칭한 박보검은 그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약자를 보호하는 어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면서 “‘난 좋은 어른일까’라는 물음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박보검이 방파제에서 막내 동명을 잃은 후 울부짖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들의 하늘이 무너지던 날 처음으로 무쇠가 무너졌다. 아비의 울음이 파도를 덮었다”는 내레이션에 딱 맞는 연기를 펼쳤다. ‘아빠’와 ‘박보검’이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단어가 한데 끈끈하게 엉긴 명장면이다. “자식을 잃은 아픔을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운을 뗀 박보검은 “대본에도 ‘무쇠가 무너졌다’는 표현이 있었다. 이 장면을 찍던 날, 비도 내리고 날씨도 흐렸다. 아이유, 동명을 연기한 아이, 도동리에 있던 배우들도 한마음으로 연기해주셔서 소화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관식이의 청년 시절을 연기한 박보검은 선배 박해준에게 중년의 관식을 넘겨줬다. 당연히 두 사람은 함께 연기할 기회가 없었다. ‘폭싹 속았수다’의 완성본을 통해 박해준의 연기를 접한 박보검은 스스럼없이 “(박)해준 선배님의 덕을 봤다”고 말한다.

“(극중) 선배님은 제 어른 시절이고 전 선배님의 어린 시절이었죠. 제가 드라마를 봤을 때도 물 흐르듯 잘 넘어간 것 같아요. 일찍 철이 들고 아빠가 된, 가장이 된 느낌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런데 선배님이 그런 느낌이 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는 어린 관식, 청년 관식, 중년 관식 모두가 다 관식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 숭고한 희생, 저도 반성해요”

정직하고 성실한 순애보
우리 주변 관식같은 사람 많아
나중에 또 곱씹어볼 작품


중년 관식의 인생은 인내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보상을 바란 적은 없다. 세월이 흘러도 관식은 묵묵히 제주 바다에 해가 뜨기도 전, 가장 먼저 배를 띄운다. “아빠가 덜 자면 너희가 더 잘까 싶어서”라는 마음이다. 이 대사를 직접 소화한 배우 박해준은 1일 서울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대사가 너무 귀해서 설렜다”고 말했다.

관식을 보며 혹자는 “판타지”라고 말한다. 세상에 이런 남자는, 남편은, 가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 숭고함에 박해준은 “자기반성을 하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관식으로 살면 살수록, 의외로 이런 가장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주변을 보니 웬만큼 관식의 삶을 사는 아버지가 되게 많더라”면서 “나는 가족 외 다른 사람한테는 인색한 편이다. 이 드라마에 푹 빠진 아내가 ‘오빠한테 관식 같은 면이 많다’고 하더라. 나도 나쁘지 않은 남편인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박해준은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국민 사랑꾼’으로 등극했다. ‘부부의 세계’(2020)에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외치며 ‘국민 불륜남’으로 등극한 지 5년 만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명대사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박해준은 관식이가 애순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자랑 자랑 웡이자랑”을 꼽았다. 그는 “저는 등 두드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그 자장가가 그렇게 듣기 좋더라”면서 “‘부부의 세계’의 때도 사랑받았는데, 지나가다 마주치면 ‘선하게 보이시네요’ 하더라. 이번에는 짠하게 바라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인 좀 해달라’고 하신다”며 빙그레 웃었다.



박해준은 관식이 사랑받게 된 공을 청년 관식을 연기한 후배 박보검에게 돌렸다. 그는 박보검의 촬영분을 보고 이를 참고삼아 청년과 중년 관식의 연기톤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의 청년 시절을 저렇게 멋있게 만들어줬구나’ 싶어서 만나면 고맙다고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먼저 고맙다고 하더라. 순애보를 가진 정직하고 성실한 관식을 잘 만들어줘서 내가 득을 봤다”고 말했다.

배우 박해준의 삶은 현재 최고조다. 지난해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1000만 배우로 등극했고, 넷플릭스 ‘더 에이트 쇼’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디즈니+ ‘북극성’, tvN ‘첫, 사랑을 위하여’ 등 차기작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하지만 차분하게 삶을 지르밟고 살아가는 관식이처럼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박해준은 좀처럼 들뜨지 않았다.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후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옵니다. 하지만 오늘을 기점으로 관식을 떠나보내며, 이 작품을 여유 있게 찬찬히 다시 보고 싶어요. 어떻게 찍었나 곱씹으며, 감탄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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