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정치의 주무대는 여의도에서
헌재·법원·검찰·경찰로 변화
법조인 출신 의원 증가가 원인

22대 현역 의원 20%가 법조인
사법부도 인권법 소속이 주류
개헌 통해 제도 변화 이뤄내야


요즘 정치의 주무대는 여의도 국회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광화문에 당사를 옮겨 놓았고, 여야 의원들은 재동 헌법재판소와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사직동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자주 얼굴을 비친다. 경찰과 검찰에는 고소·고발장을 제출하고, 법원 재판에 참석하느라 바쁘다. 헌법재판소 앞은 여야 의원들의 자리다툼이 매일 벌어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아예 방탄조끼까지 착용하고 다닌다. TV 정치 프로그램의 패널도 정치 전문가보다는 변호사가 주류다. 정치 고유의 이슈보다는 법 이슈가 많기 때문이다. 의정 활동은 대부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다.

고소·고발, 시위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정치는 초토화되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대신 ‘정치’를 하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발의하려고 했던 탄핵안은 무려 30건에 이른다. 13건이 실제 발의가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간 발의된 탄핵 건수는 18건. ‘동물 국회’로 악명 높던 제18대 국회에서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단 1건이다. 국가수반 탄핵 건수는 남미의 페루와 더불어 우리가 전 세계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모범 국가가 하루아침에 남미화가 돼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등판하면서 ‘정치의 사법화’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5개 재판, 8개 사건, 12개 혐의를 받는 이 대표가 정치의 주역이 되면서 이런 현상이 극대화됐다.

국회의원 직업에도 큰 변화가 왔다. 22대 국회에 법조인 출신은 61명(20.3%)으로 비중 측면에서 역대 최고다. 국민의힘은 검사가 9명, 민주당은 변호사가 23명인데 이 중 14명이 민변 출신이다. 이 대표 사건 변호인 5명도 국회에 들어왔다. 사실상 민주당은 이 대표의 개인 로펌 같다는 얘기가 헛말은 아닌 셈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가 검사 출신이고, 이 대표는 변호사 출신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한동훈 전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3김 시대만 해도 관료, 기업인, 운동권, 직업 정치인 등이 주류였지만, 이젠 법조인이 정치권의 주류가 된 셈이다. 이러다 보니 모든 문제를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법대로’ 풀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여야 의원 중 고소·고발이 안 된 의원이 없을 정도다.

지금 윤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가, 이 대표의 운명은 대법원이 쥐고 있는 것만 봐도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헌법재판관과 판사인 것이 자명하다. 몇몇 법관에게 정치인의 운명을 맡기다 보니 이들의 판결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이 자주 벌어진다. 정치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사법의 정치화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2011년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이정렬 판사는 SNS에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 ‘가카 ×× 짬뽕’이라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2017년엔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인천지법 오현석 판사가 ‘재판이 곧 정치’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벌어졌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법의 정치화는 심각한 수준이 됐다. 3000여 명의 판사 중 진보적 모임에 참여한 판사는 4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김 대법원장 시절 요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젠 정치인 판결을 할 때 어디 소속인지를 먼저 보는 상황이 됐다. 사법부 내 ‘하나회’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아직 해체했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이들의 특권 의식은 강고하다. 정치인들 자신이 결정할 문제를 모두 판사에게 맡기다 보니 이들의 콧대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오는 4일이면 헌재가 윤 대통령의 파면인지 복귀인지를 결정한다. 노무현·박근혜에 이어 3번째 대통령이다. 8명의 ‘선출되지 않은’ 재판관이 1600여만 명의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운명을 좌우한다. 헌법재판소 모델인 독일도 총리는 탄핵 대상에서 제외한다. 미국은 하원이 발의한 탄핵안을 상원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수시로 총리가 낙마한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따른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현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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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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