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받아 조치”를 의견 치부 서울고법 형사6-2부 李 재판 2차 인혁당 사례만큼 치욕적
군사정권 비판한 운동권 세력 집권 위해선 무슨 짓이든 감행 尹 심판도 법치 정상화도 중요
지난 3월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2심 선고가 있었다. 서울고법 형사6-2부의 결론은 1심을 뒤집은 ‘전부 무죄’였다. 50년 가까이 법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판결은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판결이라고 할 만한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과 비교해 보자. 당시 중앙정보부는 무고한 사람들을 끌고 가 온갖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그렇게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검찰은 기소했으며, 법원은 사형 선고를 확정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형이 집행됐다.
만약 당시에 판사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사건이 조작됐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간첩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서게 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형을 선고했다면 이는 사법살인이다. 군사정권 시절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수없이 많다.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일로 잊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쟁취한 운동권에서 끊임없이 비판해 오던 명백한 군사정권의 과오다.
한가지 가정을 해 보자. 인혁당 사건 판결을 맡았던 법관이 당시에 피고인들이 중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은 결과 수사관들이 불러주는 대로 그 내용을 외워서 진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점이 확실한 증거에 의해 확인됐다. 이에 검찰이 살인 혐의로 기소하면서 예비적 공소사실로 살인방조를 기재했다. 1심 재판부는 모든 범죄 사실이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증명됐으며 이는 살인방조에 해당한다면서, 군사정권 아래 판사로서 달리 처신하기 어려웠을 것을 고려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명백한 사법살인임이 밝혀졌는데 집행유예가 무슨 말이냐며 검사가 항소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심리를 한 끝에 당시에 해당 판사가 한 일은 방조 ‘행위’가 아니라 법관으로서 ‘의견’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므로 무죄라고 선고했다. 이 대표에 대한 2심 무죄 선고는 가위 이 정도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용도변경 해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조치했을 뿐이라고 한 것이 이 대표의 발언이었다. 법원은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국토부와 성남시의 당시 공무원들을 전부 소환해서 증언을 들었다. 그 누구도 국토부가 협박한 적이 있다거나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는 진술을 한 바 없다.
그러니까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는지는 ‘증거에 의해 증명이 가능한 것’으로서 사실에 해당한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협박행위를 한 주체가 국토부 공무원이므로 피고인 자신의 행위에 관한 진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협박을 받아서 용도변경을 해주었을 뿐이라고 발언한 행위가 판단의 대상임을 재판부가 모를 리 없으니 기괴하다. 결국, 당시에 이 대표가 국토부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았고 이를 ‘협박’으로 지칭했으므로,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라 의견 표명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가 이처럼 무리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킬 판결을 내린 이유가 궁금하다. 생각해 보자.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되면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진다.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다. ‘판결이 파기될 가능성도 있지만, 대법원에도 우리 편은 있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쓰든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도록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철저한 진영 논리다.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됐는가. 출발점은 군사독재 시절로 올라간다. 군사정권은 사법기관으로 하여금 사건을 조작하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 행태를 비판하며 증오하던 사람들이 운동권이자 좌파다. 그러던 인사들이 이제 독재정권의 법 왜곡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군사정권을 증오하며 학습했다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정당하다고 여기면서, 그런 일을 아주 대놓고 한다. 운동권이 군사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내일 탄핵심판 선고에서 윤 대통령이 제자리로 돌아와 이런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 법치주의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