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은 정치부 차장

정치권은 ‘12·3 비상계엄’ 프레임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지만, 국민은 여기서 벗어나 ‘대혼란 이후의 일들’을 하나씩 복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계엄 초, 국민은 70여 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성취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조치에 분노했다. 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탄핵소추를 통해 계엄 조치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물었다. 121일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은 채 상대 허물을 과장하며 국정 혼란을 부추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계엄 이후, 이 대표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힌 점, ‘계엄 대통령’의 지지율이 되레 오르는 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반헌법적 비상계엄 조치를 했다면, 민주당은 그 후 121일간 반헌법적 ‘입법 폭력’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퇴임(4월 18일) 전에 선고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 재판관 임기 만료 후에도 기존 재판관이 계속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헌법재판관 임기는 6년으로 한다’는 헌법 제112조에 정면으로 반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헌법 재판을 끌고 갈 수 있다면, 재판관을 ‘넣었다 뺐다’하는 위헌 법률을 언제든 발의·상정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룰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자, 헌법 수호 의지가 없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탄핵 공세는 더욱 문제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특히, 민주당은 최근 데드라인을 제시하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재탄핵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민주당 초선 의원들은 마 후보자를 임명할 때까지 권한대행직을 승계하는 국무위원들을 차례로 탄핵하는 ‘줄탄핵’도 예고했다. 국정 마비를 볼모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비상계엄 조치의 원인 중 하나로 민주당의 탄핵 공세가 지목된 상황에서, 계엄 이후에도 국민 눈치를 보지 않고 지속적 탄핵 공세를 벌이는 것은 큰 문제다. ‘개딸’로 불리는 극단 지지자만을 받드는 그릇된 정치이자, ‘언제 맹수로 돌변할지 모르는 국민’(김종필 전 국무총리)을 좀체 두려워하지 않는 나쁜 정치를 벌이는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며 국민은 이 대표가 정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단번에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통령 자리’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대통령이 돼 ‘통합과 포용’ 대신 ‘사적 복수’의 시간을 갖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의 시선이 늘고 있다.

최근 영남 지역의 산불은 분명 재앙이지만, 산불 이후 침엽수 대신 활엽수를 심을 조그만 기회가 생기는 의미도 있다. 대형 산불이 나는 시기·징조를 가늠할 수 있고, 조금 더 시스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계기도 일정 부분 마련된다. 현명한 국민은 100일 넘게 재앙의 원인을 붙들며 정쟁화하고 위기를 조장하는 것보다는, 이제는 재앙을 겪은 나라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헌신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원할 것이다.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정치부 차장
손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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