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봄의 왕국
표지율 글·그림│달그림


봄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봄은 겨울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대놓고 추운 겨울이 낫다. 따뜻해질 거라는 희망을 줬다가 뺏는 봄은 겨울보다 더 힘들다. 그림책 ‘봄의 왕국’의 표지는 차가운 분홍이다. 벚꽃이 떠오르는 화사함이 아니라 서늘한 보랏빛이 감돈다. ‘CASTLE BOM’이라는 건물 앞, 은방울꽃에 한 모녀가 둘러싸여 있다. 은방울꽃의 꽃말이 뭐였더라. 엄마가 딸에게 왕관을 수여하는데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아무래도 꽃놀이하듯 산뜻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 ‘봄’은 깨진 술병같은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 엄마와 자신을 괴롭히는 괴물을 피해 도망친다. 모텔 ‘봄’에 몸을 숨긴다. 낯선 곳을 무서워하는 봄에게 엄마가 말한다. “이곳은 성이고, 너는 이 성의 공주라고 생각해 봐.” 그러자 낡은 모텔은 어린이의 왕국이 된다. 봄은 또래 ‘겨울’을 왕자로 삼는다. 왕관을 쓰고, 연회복을 입은 채 성을 거닌다. 상황은 거짓일지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어린이의 행복은 진짜다. 숙박객들은 봄의 언니, 삼촌, 할머니가 돼 준다. 안타깝게도 세상엔 좋은 어른만 존재하지 않는다. 추잡한 욕망을 지닌 ‘코빨개’는 뱀처럼 교활하게 봄에게 다가간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어린이는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봄을 보호하지만 코빨개가 낸 불에 모텔은 타버린다.

 어린이가 지켰던 세상은 순식간에 속절없이 사라졌다. 봄은 더는 공주가 아니고 왕자와 함께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봄은 울지 않는다. 가짜로 느껴질 만큼 추운 봄일지라도 희망을 지닐 수 있다는 걸, 어린이는 차가운 현실에서도 체득했다. “당신은 틀림없이 행복해질 거예요.” 은방울꽃의 꽃말이다. 보랏빛이었던 책은 한층 따뜻해진 분홍으로 마무리한다. 진짜 봄은 반드시 온다는 듯이. 48쪽, 1만8000원.

김다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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