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의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60%를 돌파했다. 2021년 40% 초반이었던 월세 비중은 4년 만에 20%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실제로 주변에서 최근 전세 계약을 했다는 이들을 보면 100% 전세는 별로 없고 비교적 적은 보증금에다가 월세를 내는 반전세가 대부분이다.

전세 제도는 오랜 기간 무주택 서민들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관습이 있었다. 땅이나 가옥을 담보 잡혀 보증금을 낸 사람들에게 사용권을 주는 ‘전당’ 관행이다. 일제강점기 통감부가 작성한 ‘관습조사보고서’는 당시 전세제도와 관련해 ‘통상 1년이며 한성부(서울)에서는 100일’ ‘전세 기탁금액(보증금)은 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는 7·8할’ ‘한성부는 전세 문서를 기록해 제3자 대항력을 확보 가능’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미군정 기간인 1949년 법률자문관이던 찰스 로빈기어는 한국민법전초안에서 전세권을 서구의 모기지(mortgage)와 유사한 제도로 인식해 법제화의 논리를 세웠다. 1958년 민법의 제303조 1항은 “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해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수익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해 전세권이 제도화되기에 이른다. (2013년 경기개발연구원 ‘존폐기로의 전세제도’ 발췌)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제도다. 금융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임대인은 월세를 못 받을 염려를 덜면서 거액의 자금을 무이자로 조달하고 임차인도 월세 세입자의 서러움 없이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전세를 살다가 ‘벼락 거지’로 전락했다고 원망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2013년까지 50%대였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이 2016년엔 70%까지 치솟으며 ‘전세대란’이 빚어졌고, 세입자들은 앞다퉈 내 집 마련에 나섰다. 이는 서울 아파트값 폭등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집을 사서 전세를 주는 ‘갭투자’, 전세를 살다가 망했다는 의미의 ‘벼락 거지’ 등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정부의 전세 정책도 시장만큼이나 롤러코스터를 타 왔다. 정부는 포용적인 전세 보증보험과 저리의 전세 대출로 전세살이를 장려했지만, 전세 사기 사태가 불거지자 전세 보증 한도를 줄이도록 했다. 세입자가 최대 4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 사용도 의무화했다. 집주인은 전세 놓을 유인이 떨어졌고,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벼락 거지가 될까 봐 전세살이를 기피하게 됐다.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전세제도가 존폐 위기에 놓인 셈이다.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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