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국가이익만 있을 뿐이다”라고 한 영국 외교장관 파머스턴 경의 발언이 결코 망언이 아님을 목도하고 있다. 힘에 의한 서열, 즉 군사력·살상능력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힘겨운 방어전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얘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공의 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의 참사를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호소했지만, 휴전협상 과정에서 매우 불리한 처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군사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갈파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란 말을 상기시킨다.

강자의 자국 이익 우선 논리는 남 얘기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확실한 핵 국가’(Nuclear Power)라고, 북핵을 용인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최근 미 고위 관계자는 ‘북한과 대화 재개’ 가능성까지 흘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제관계를 손익 셈법으로 본다.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차지하려 하고, 가자지구를 중동의 리비에라화하려 한다.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과 체결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푸틴의 무시로 우크라이나에 참사를 안겼다. 북한 역시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 소형화·규격화한 첨단 전술핵으로 겁박하고 있다. 또, 어떠한 목적이든 핵실험을 금지하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러시아의 비준 거부로 가동 불능 상태다. 국제안보 레짐은 변질돼 강대국들의 실익에 휘둘린다.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특권과 자동안전장치가 아니란 말이다. 미국은 집권당의 성향에 따라 가치외교에 집착하지 않고 자국의 손익을 계산한다. 국제법일지라도 종잇조각에 불과한 법문일 뿐 절대적인 강제와 통제력은 없고, 오직 군사적 자위력만 있다는 뜻이다.

옛 소련 영토 수복의 제국주의적 망상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본질이다. 시진핑(習近平) 역시 하나의 중국을 위해 대만 정복에 골몰하고 있다. 우크라 침공의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종전될 경우 중국은 대만을, 북한은 한국을 무력침공의 잣대로 봐서 자칫 오판으로 인한 분쟁이 한반도로 튈 수도 있다. 제국주의의 금기가 깨어지면 독립과 국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국가라 할지라도 과거 큰 제국의 영토로 복속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의견 분열이라는 사각지대를 틈타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다. 또한, 러-우 전쟁 증파(增派)로 전투력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으며, 현대전 교리 및 장비 사용 기술을 습득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들도 현대전 경험 습득을 우선 과제라고 했다. 러-우 종전 후 북한 정권은 이를 교리화해 남침을 위한 결기를 다질 것이다. 향후 러시아는 북한의 파병에 대한 보은 및 군사동맹으로서 한반도 참전을 고려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상식 밖의 트럼프 외교는 항구적인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한미동맹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북·중·러에 대한 압박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약점인 비교적 부진한 해군력, 미 경제 불황 등에 우리의 가치(조선·반도체 등)를 최대한 부각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자강(핵개발, 핵잠재력 확보 등)은 필수다. 안보에는 여야 없이 상수의 공통분모임을 확고히 하고,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면서 우리의 독자적인 방위력이 강화하는 데 전 국민의 결기를 모아야 한다.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장재필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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