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멸적 패배 1년 만에 尹 몰락 울분 토하지만 되돌릴 수 없어 포스트 윤석열 시대 열어갈 때
보수 대통합이 회생의 대전제 경선 흥행 땐 야당 넘을 수 있어 탄핵·계엄 찬반 대립 극복해야
보수 정치세력은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선만 겨우 지키는 궤멸적 패배를 당한 뒤 1년 만에 대통령 파면이라는 비참한 상황에 직면했다.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향해 울분을 토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처럼, 님을 보내지 않았지만 님은 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어야’ 할 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몰락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안철수·이준석과의 연대, 심상정의 이재명 표 잠식(2.37%) 효과가 합쳐진 끝에 간신히 0.73%P 차이로 당선됐음에도 독주와 불통으로 일관했다. 취임 직후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압승을 안겨줌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넓혀주었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는 마지막 경고였으나 묵살했다. 최악의 총선 참패로 국정 동력은 급속히 상실됐고, 정치력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돌파하려다 파국을 맞았다.
윤 전 대통령을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친다고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보수주의는 현실주의다. 선거에서 이겨 보수 노선으로 국정을 이끄는 게 최고의 목표다. 과감히 연대하고, 정책도 수정한다. 그런데 거꾸로 갔다. 보수주의는 체제 수호에 앞장선다. 비상계엄은 헌정 파괴 행위다. 경고용·계몽용으로 군대를 동원했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다. 정치는 양보와 타협으로 규칙을 만드는 일이고, 법치는 규칙에 따라 흑백을 가린다는 점에서 상극이다. 뼛속까지 검사라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보수 정치는 멈출 수 없다.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견디고 위대한 정치가 반열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성공은 최종적(final)이지 않고, 실패는 치명적(fatal)이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계속 나아가려는 용기다.’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일이 포스트 윤석열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다.
윤 전 대통령의 각성이 중요하다. 변명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여당을 탈당하고, 탄핵 찬반을 넘어 대동단결해 거대 야당에 맞서줄 것을 호소해야 한다. 곧 실시될 대선에서 여당이 이겨야 ‘야당의 내란’이라는 주장도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여당도 새로 창당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대통합이 대전제다. 한동훈·안철수부터 김문수·오세훈·홍준표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구심력은 승리의 동력이 되고, 원심력은 자멸의 씨앗이 된다. 경선 과정을 흥행과 통합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야당은 후보 경선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더 돋보일 것이다.
현행 당헌·당규는 당심과 민심 50%씩 ‘원샷 경선’을 규정하고 있다. 무한 비방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미국식 순차 경선, 최하위 선수를 차례로 탈락시키는 사격대회 서바이벌 방식 등 흥행을 극대화하면서 갈등은 줄일 규칙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의 첫 대통령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떤 상대 후보도 비방하지 않는 ‘모두의 차선(everyone’s second choice)’ 전략으로 3차 투표 끝에 선거인단 1.5표 차이로 후보가 됐고,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남았다. 국민이 공감하고 체감할 획기적 정치개혁 방안도 내놔야 한다. 국회의원 임기를 미국처럼 2년으로 줄이거나, 중대선거구제와 결선투표제 등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시급하다.
보수 정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도 ‘주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집에 불이 나면 주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불을 끄려 한다. 이웃집 소방 호스도 빌려온다. 보수는 ‘중심’을 자임하기 때문에 핑계를 대지 않는다. 길거리 보수도 필요하고 술자리 보수도 필요하다. 그러나 배타적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선거에 이기는 보수가 진짜 보수다. 지금 보수 성향 국민은 ①계엄 반대, 탄핵 찬성 ②계엄 반대, 탄핵 반대 ③계엄 찬성, 탄핵 반대 등 세 갈래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선택의 문제다. 서로 삿대질하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이고, 합심하면 해볼 만하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명분을 인정받으면 재기할 수 있지만, 분열로 패배하면 집권은 요원해지고, 플라톤의 말대로 저질 정치에 지배당하는 결과를 자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