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 사회부 차장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2024헌나8) 사건을 선고했다. 12·3 비상계엄 후 11일 만인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헌재에 접수된 지 111일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지귀연)에서 진행 중인 내란혐의 형사재판이 남았지만 이날 선고로 1979년 10·26 사태 후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소환한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역사적 평가가 1차로 내려진 셈이다. 현시점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사법 판단과 동시에 꼭 짚어야 할 부분은 비상계엄 후 123일 동안 드러난 사법·정치시스템의 숱한 문제·미비점이다. 가장 먼저 민낯이 확인된 대상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수사기관이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사 수사범위를 대폭 줄인 검찰청법 개정, 졸속 공수처법 제정 등 수사권 조정 강행으로 내란죄 수사는 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이 동시에 내란 혐의에 연루된 경찰만 가능했다. 하지만 검·경·공수처의 수사 주도권 다툼은 14일 만에 이첩요구권을 내세운 공수처로 일원화됐다. 수사능력·경험 부족에 수사권도 없는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에 난항을 겪고 ‘영장쇼핑’ 논란까지 빚었다.

헌재 역시 탄핵심판의 패자 중 하나다. 국회가 탄핵심판 초반 재판이 오래 걸리고 입증이 어려운 형법상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철회했지만, 헌재는 변론 종결까지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검찰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한 점, 윤 대통령의 증인 직접신문 금지·초시계를 동원한 신문시간 제한 등도 논란을 빚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최우선 처리한다는 원칙 천명과 달리 변론 종결 후 한 달 넘게 결론을 내놓지 못하면서 탄핵 찬반 양측의 대립과 정치·사회 불투명성을 증폭했다는 비판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무조건 빨리 결정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흠결 없는 결정도, 신속 심리도 실패한 셈이다. 4월 첫 주 4개 여론조사업체의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헌재 탄핵심판에 대한 신뢰도는 46%로 급락했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6%로 동률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거치며 가장 낯부끄럽고 퇴행적 행태까지 보인 패자는 정치권이다. 탄핵심판 초기 국민의힘이 재판 진행에 불만을 표했던 것과 달리 헌재 심리가 길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골적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은 탄핵심판 9전 9패에도 마은혁 후보자 미임명을 문제 삼아 국무위원 줄탄핵을 공언했고, 퇴임을 앞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임기 연장 법안을 밀어붙여 ‘위인설법’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권은 헌재 주변에서 천막당사, 릴레이집회 등으로 탄핵 찬반으로 양분된 시위대를 부추기는 ‘광장의 불복’에도 앞장섰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재판관 3인 실명을 거론하며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말라”고 압박한 것은 단연 최악 장면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대통령 탄핵심판의 불행이 8년 만에 재현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교훈을 망각한 탓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오늘로 끝났지만, 탄핵심판이 남긴 한계·문제를 고치고 갈라진 국론을 통합하는 과제는 오늘이 시작이다.

김남석 사회부 차장
김남석 사회부 차장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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