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가짜뉴스 장사꾼 사이버 레커
법 공백 타고 협박으로 돈벌이
일반인의 도덕적 무감각 만연

클릭하면서 ‘모른 척’ 가해자
인터넷에 폭로하는 사적 제재
플랫폼 책임 묻는 法정비 시급


디지털 시대, 가짜뉴스와 돈벌이의 가장 사악한 결합이 사이버 레커다. 이들 악성 유튜버는 온라인에서 가짜뉴스, 특히 유명인에 대한 허위 뉴스를 선정적으로 짜깁기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괴롭히는 것은 기본이고 대상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돈을 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사이버 레커 근절을 위한 미디어 정책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김새론 배우가 한 유튜버의 사생활 폭로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앞서 2019년에는 배우 설리가 악플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이들의 괴롭힘과 무차별 폭로에 BJ 잼미, 이선균 배우가 생을 끝냈다. 수년간 이들에게 협박당한 쯔양 사건도 있었다.

그때마다 수천·수만 명이 이들을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을 올렸고, 국회는 정책 토론회를 열고 의원들은 법안을 냈다.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면 흐지부지되고 김새론 사건에서 보듯이 이들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돼야 하나.

따지고 보면 문제는 우리 모두 사이버 레커에 놀아나는 공범이라는 사실이다. 유튜브와 인터넷의 가짜뉴스가 일상이 되면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분노하지만 동시에 급속히 무감각해지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더 이상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가짜인 줄 알아도 일회성 재미로 소비한다. 때론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겠냐는 말도 수군거린다. 이렇게 일단 한번 클릭하면 강력한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유튜브 이용자의 전체 시청 시간 중 70% 이상이 알고리즘 추천이라고 한다. 게다가 선정적 콘텐츠일수록 알고리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런 클릭들이 모여 사이버 레커에게 ‘실버메달’ ‘골드메달’을 안기며 돈을 벌게 해준다.

쓰레기 같은 이들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공신력 있지만, 역시 클릭에 목마른 기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실에 준하는 지위를 얻는다. 실제로 김새론 배우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받는 유튜버가 내보낸 관련 방송 영상은 4개였는데, 이를 보도한 매체의 기사는 무려 1000개를 넘었다고 한다. 개념예술가 제니 홀저의 그 유명한 문장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를 외치고 모두 고해성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김새론 배우의 경우는 유족이 유튜버의 괴롭힘과 김수현 배우와의 관계를 또 다른 사이버 레커를 통해 폭로하면서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2차, 3차 피해가 계속되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최소한의 애도와 함께 관련 이슈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폭로전이 계속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가 떠나 진실을 가리는 것이 어려워진 가운데 보통 사람들이 알 필요도 없는 자극적인 내용이 쏟아지고 고소·고발전이 끝없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공식적인 사법 절차처럼 긴 시간에 걸쳐 잘잘못을 따져야 하는 방법 대신 인터넷을 통해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폭로해 버리는 이른바 ‘사적 제재’를 택하고 있다. 설령 그 통로가 위험한 사이버 레커라도 말이다.

초연결 사회에서 악의적 유튜버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 피해자가 나오고, 엄청난 규모의 미필적 가해자 겸 피해자가 쏟아지지만 법과 제도의 대응 속도는 너무 늦다. 유튜브는 방송이 아니기에 방송법에 적용되지 않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삭제를 권고할 뿐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는 한계, 수익의 절반가량을 가져가는 유튜브가 콘텐츠 규제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누누이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피해자가 유해 콘텐츠를 신고하면 미국 본사에 소명하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가해자의 개인정보를 직접 알아내야 한다니 어쩌란 말인가.

최근 국회에서 해외 플랫폼에 책임을 묻고 악성 유튜버의 수익을 몰수하는 한편, 벌금을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이 추진 중이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4일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훼손을 한 경우 최고 15억 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 흐지부지돼선 안 된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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