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채 위 글·그림에서 조선 문인 이상향 드러나
단원·추사 비롯, 한용간 ‘서호육교’ 등 첫 공개
중국 선면서화, 금속조각 장식한 냉금지도 소개
조선 문인들은 단오가 되면 부채를 주고받곤 했다. 부채는 처음에 따사로운 봄볕을 가리고, 여름 더위를 물리치던 실용적 의미가 컸지만, 점차 가을과 겨울에도 필수품이 됐다. 계절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니고 다니게 된 것. 실용적 의미 그 이상이 됐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로 가면 부채는 글씨를 써넣어 정담을 나누는 서신으로 활약했고, 아름다운 산수나 다양한 동물이 담긴, 멋스러운 예술품이 됐다.
오는 9일 개막하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봄 전시 ‘선우풍월(扇友風月·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은 선조들의 부채가 품고 있는 유구한 이야기의 역사를 풀어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133점의 선면(扇面) 서화(부채에 쓰고 그린 그림과 글씨라는 뜻) 중 54건(55점)을 처음으로 해제하여 선보인다. 1977년 열었던 부채 전시 이후 48년 만에 개최하는 선면서화 전시로, 23건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2층 전시실에서는 주로 조선과 중국 청나라의 선면서화를 소개한다. 조선의 선면서화는 모두 조선 후반기 작품들로, 산수화부터 사군자, 동물과 식물을 그린 화훼영모화까지 당시 회화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산수화 중에서는 조선 문인들이 동경한 중국의 명승이나 관념 속 이상향을 담은 그림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작품이 한용간이 중국 항주의 서호 풍경을 그린 ‘서호육교’와 혜천 윤정이 중국 강남 지방의 절경을 그린 ‘삼오팔경’이다. 모두 처음 공개된다.
매화 그림으로 유명한 우봉 조희룡이 부채에 그린 묵란화 작품 2점도 전시됐다. 이는 우봉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반영하고 있어 흥미롭다. 앞선 시기 ‘난생유분’은 추사 김정희가 강조한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의 느낌을 담고 있다. 반면, 그 아래 놓인 ‘분분청란’은 좀 더 자유분방하고 현란하게 그려졌다. 이에 대해 김영욱 간송미술관 전시교육팀장은 "난초를 잡초처럼 표현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면서 "전라도 유배 이후 변화된 경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추사 학파와 교류했던 청나라 문인들이 그린 중국 선면화도 소개된다. ‘청죽’은 청나라 학자 섭지선이 조선 정조의 사위이자 문인화가였던 홍현주에게 여름에 보낸 선물로 전해진다. 이름 그대로 바람에 나부끼는 푸른 댓잎을 부채에 그려 넣었다.
단원 김홍도의 ‘기려원류’와 추사 김정희의 ‘지란병분’도 조선 선면서화의 맥락 안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두 작품은 다른 전시들을 통해 자주 공개되고 있으나, 조선 선면서화의 양식을 이끌었던 대표작으로서 새삼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간송의 작품 구매 경향이나 당시의 미술시장 분위기와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김 팀장은 "초기 간송 컬렉션은 추사 김정희,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순으로 작품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송미술관 소장 선면선화도 추사의 비중이 높다. 20세기 들어서 김정희와 추사학파의 작품 수집이 유행했던 것과 맞물려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근대 서화계의 기틀을 다진 20세기 초 작가들의 부채 그림은 1층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 최초의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서화미술회와 최초의 미술인 단체인 서화협회에서 활동했던 서화가들의 작품들로, 안중식, 조석진,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고희동 같은 당대 유명 화가들의 부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부채에 사용된 종이인 ‘냉금지(冷金紙)’도 소개된다. 금이나 은, 놋쇠, 구리 등의 금속조각을 붙여서 장식한 종이로,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유입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 외에도 파초 모양을 본떠 만든 파초선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진 부채그림들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내달 25일까지(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5000원.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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