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탄핵 이후 보수의 길

민주, ‘尹 탄핵 - 보수 무력화’ 진행 중… 대선 이겨 입법·행정 동시 장악 땐 무한독주
국민의힘, 8년 전 보수 몰락의 전철 밟나… 선명한 ‘깃발’ 세워 단결·혁신해 비전 보여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따라 정치권은 6·3대선 태세에 들어갔다. 특히 1호 당원인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위기를 맞게 된 보수 진영은 10%의 가능성으로 90%의 불가능성과 맞서는 힘든 싸움을 벌여 나가야 한다.

◇위기의 보수

탄핵 정국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의 다음 수순은 정권 쟁취다. ‘윤석열 탄핵’이 ‘국민의힘 무력화’로, 다시 ‘보수의 궤멸’로 줄줄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어서 보수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보수 진영을 겨냥한 ‘N차 탄핵’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지금은 개헌이 아니라 내란 종식이 먼저”(이재명 대표), “내란 동조 의원들을 모두 징계해야”(박찬대 원내대표), “내란정당은 대선에 참여할 자격 없어…해산해야”(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발언이 N차 탄핵의 정황을 말해준다.

보수는 12·3 계엄 이후 4개월간의 탄핵 정국에서 뭘 배웠을까. 계엄이 부적절하다고 여겼던 보수 지지층 상당수가 ‘그래도 탄핵엔 반대’라고 부르짖은 데엔 ‘3+α’의 이유가 작용했다. 첫째 보수의 몰락을 걱정했고, 둘째 민주당에 의한 의회·행정부 동시 장악을 우려했고, 셋째 체제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깊은 공포심이 있었다. 그 외에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적법절차 훼손 문제가 ‘+α’를 구성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지층의 우려와 열망을 담아내지 못했다. 진보가 뭉치는 동안 보수는 분열했다. 8년 전 대선 때 보수는 내세울 인물도 비전도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 창출의 들러리 역할만 하다 말았는데, 지금 그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박근혜 탄핵’ 이후 자유한국당엔 ‘탄핵정당’ 주홍글씨가 새겨졌고, 이후 보수는 대선(2017년)-지방선거(2018년)-국회의원 총선거(2020년) 등 전국 단위 주요 선거에서 내리 참패했다. 보수는 오랫동안 내전을 치렀고, ‘제로 그라운드’의 폐허에 파묻혔다. 탄핵은 확실히 ‘3족을 멸하는 사건’이었다.

‘윤석열 탄핵’ 사건은 보수 정치권이 8년 전의 ‘박근혜 탄핵’으로부터 배운 게 거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앞으로도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보수의 앞길엔 회복하기 어려운 지옥도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과거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행보

탄핵 정국에서 보수가 깨달은 것도 있다. 국민은 절대다수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자행해온 ‘다수의 폭정’(토크빌)에 분노하게 됐고, 대한민국이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동맹 세력과 대중·대북 눈치보기 세력으로 나뉘어 ‘생사를 건 인정투쟁’(헤겔)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이해하게 됐다.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질서로 삼는(헌법 전문·제4조) 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좌파의 숙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입법권력을 가진 민주당이 행정권력까지 거머쥐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경각심도 커졌다. 3권분립을 파괴해 입법과 행정을 동시에 장악한 역사적인 사례는 나치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33년 1월 독일 총리에 오른 히틀러는 2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계기로 그해 4월 이른바 ‘ 수권법 ’을 통과시켰다. 수권법은 입법권을 의회에서 정부로 이양하며 헌법에 앞선다는 것을 포함한 총 다섯 개의 조문으로 구성됐다.

수권법 발동 이후 바이마르헌법은 사문화됐고 나치 이외의 정당은 해산됐으며, 같은 해 7월 합법적으로 독재 체제가 확립됐다.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히틀러는 대통령의 권한까지 물려받는 법률을 제정해 종신직 총통에 올랐다. 이 모든 과정이 표면상 합법적인 법률 제정과 이에 따른 통치 방식으로 이뤄졌다. 합법의 탈을 쓰고 모든 권력을 접수한 ‘ 법에 의한 지배 ’가 이렇게 완성됐다.

민주당 역시 윤석열 정부 3년간 내각 줄탄핵과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부 기능을 멈춰 세웠다. 탄핵심판이 지연되자 민주당은 위헌적 내용을 담은 법안들을 일방적으로 강행 통과시키기도 했다. 입법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6·3대선을 통해 정권까지 장악할 경우 국정 독주를 막을 세력이 사라지고, 합법의 이름으로 다수의 폭정과 폭주를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증하는 상황이다.

◇10%의 희망

보수의 이름을 내걸고 지역 패권에 기대어 각자도생해온 보수 정치는 수명이 다했다. ‘박근혜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대선 당시 득표율은 문재인(41%)·안철수(21%)·심상정(6%) 등 ‘진보·중도 68%’, 홍준표(23%)·유승민(7%) 등 ‘보수 30%’로 대략 ‘7(진보·중도) 대 3(보수)’ 구도였다. ‘윤석열 탄핵’ 이후 형성될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 예상되는 득표율 역시, 이재명에 대한 대중의 강한 비호감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6 대 4’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6·3대선을 치른다면 보수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 원로 정치인은 7일 기자에게 “10%의 희망으로 90%의 절망을 이겨내야 하는 게 지금 보수가 마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수가 6·3대선에서 희망의 불씨를 키워 나가려면 ①보수의 철학과 비전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②그것을 실현할 세력과 정책을 구축하며 ③통합과 혁신으로 가능성의 예술을 보여줘야 한다.

10%의 가능태를 50% 이상의 현실태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는 ‘깃발’ 즉 대선주자 세우기다. ‘깃발’은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근대화 정신을 계승·발전하고, 보수의 체질과 관성을 바꾸며, 성장·안전·번영의 ‘신 부국강병’이라는 시대정신에 조응하는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에 호소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단결하고 혁신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두 개의 당으로 분열돼 치른 8년 전 대선에서 회복할 수 없는 참패를 당한 비극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당 밖 세력과의 선거동맹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사불란한 대오를 구축한 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사실상의 ‘이재명 추대’ 형식으로 치러질 게 분명하다. 국민의힘은 10명이 넘는 주자들이 대중과의 피드백 속에서 혁신경쟁을 벌인다면 유권자의 관심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완의 프로젝트

보수의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는 박근혜·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미완의 프로젝트’는 6·3대선 이후 또 한 번 시도할 기회를 갖게 될까. 보수 정치권에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탄핵 정국을 거치며 급부상하기 시작한 ‘동물성 보수’에서 궁극의 희망을 본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법에 의한 지배’란 통치자가 법 밖에서 군림하며 법을 통치수단으로 삼는 것. 거꾸로 통치자가 일반 국민과 함께 법 안에서 법치주의를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법의 지배’라 함.

‘수권법’은 의회가 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법률. 일반적으로는 1933년 독일 나치 정권에 입법권을 넘겨 일당독재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법률을 말함. 전권위임법, 전권부여법 등으로도 쓰임.

■ 세줄 요약

위기의 보수 : ‘윤석열 탄핵’은 ‘국민의힘 무력화’와 ‘보수의 궤멸’ 예고편일 수도.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는 대선(2017년)-지방선거(2018년)-국회의원 총선거(2020년) 등 전국 단위 주요 선거에서 내리 참패.

민주당 행보 : 과거 나치는 수권법을 통해 합법의 이름으로 입법권을 의회에서 정부로 위임시켜 독재체제 완성. 민주당이 6·3대선에서 승리하면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동시 장악해 다수의 폭정을 제도화할 수도.

미완의 프로젝트 : 6·3대선에서 보수는 10%의 희망으로 90%의 절망과 맞서는 힘든 싸움 벌여야. 시대정신을 가진 ‘깃발’을 내세워 단결·혁신·연대로 비전을 보여줄 때 희망이 생기고 ‘미완의 프로젝트’도 회생할 것.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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