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딸기 시즌’이 되면 특급호텔과 베이커리, 카페에서 딸기를 테마로 하는 특별 메뉴들을 앞다퉈 내놓는다. 사진은 한 업체의 딸기시루.  SNS 캡처
한국에선 ‘딸기 시즌’이 되면 특급호텔과 베이커리, 카페에서 딸기를 테마로 하는 특별 메뉴들을 앞다퉈 내놓는다. 사진은 한 업체의 딸기시루. SNS 캡처


■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딸기를 대하는 미각 문화

“평생 먹은 딸기 중에 제일 맛있어.”

한국 딸기를 처음 먹어본다는 미국인 친구가 딸기를 한입 베어 물고 한 말이다. 한국 사람들보다 칭찬에 관대한 외국인 특성상 과장이 섞여 있겠다 감안했지만, 표정만큼은 진심인 듯했다. 실제로 한국산 딸기는 높은 당도와 부드러운 과육으로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자부심을 느끼며 한국에 있는 딸기 뷔페를 소개해줬더니 반응은 더 뜨거웠다.

“딸기로만 구성된 뷔페? 그런 게 진짜 있어? 당장 가자.”

한국에선 겨울부터 봄까지 이른바 ‘딸기 시즌’이 되면 특급호텔마다 앞다퉈 딸기 뷔페를 선보인다. 딸기 타르트, 딸기 케이크, 딸기 마카롱, 딸기 주스는 물론이고 딸기 김밥처럼 엉뚱한 메뉴도 등장한다.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공간은 ‘맛’보다도 ‘경험’을 먹는 소비를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베이커리나 카페에서도 딸기를 테마로 하는 시즌 한정 메뉴들을 내어놓으며 분위기를 더한다. 이쯤 되면 딸기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딸기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과일이지만, 한국처럼 특별하게 대하는 나라는 드물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딸기를 그저 일상적인 ‘식재료’로 여긴다. 시리얼에 얹거나 샐러드에 넣고, 딸기잼이나 소스로 가공해서 먹는다.

이러한 식문화의 차이는 유통과 품종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국토가 좁고 유통망이 촘촘한 한국에서는 과육이 부드럽고 당도가 높은 품종도 신선하게 유통할 수 있다. 설향, 금실, 킹스베리 등 한국 품종들은 단맛과 향이 뛰어나 생으로 먹기 적합하다. 특히 설향은 평균 당도가 10브릭스를 넘어서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겨울부터 봄까지 하우스 재배로 집중 출하하면서 ‘딸기 시즌’이 형성되었다. 하우스 재배는 연중 가능하지만, 과일이 귀한 겨울과 봄철에 맞춰 출하함으로써 ‘귀한 딸기’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구축됐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운송 거리와 저장성을 고려해 크고 단단한 품종이 주를 이룬다. 단맛보다 신맛이 더 강해 생과일로 먹기보다 조리에 활용되는 편이다. 또한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연중 수입되며, 대형마트에서 사계절 내내 흔히 볼 수 있는 과일이라 계절감을 느낄 틈도 없다.

한국인은 제철음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짧은 기간 안에 압축적으로 즐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봄이 오면 단순히 딸기를 사 먹는 수준을 넘어, 테마형 뷔페로까지 그 경험을 확장한다. 눈과 입이 함께 즐기는 체험형 소비문화인 셈이다.

작고 붉은 과일 하나가 한국에선 ‘계절의 미학’이 되고, 외국에선 ‘조리 재료’로 다뤄진다. 이 작은 차이는 결국 음식문화의 큰 맥락을 보여준다. 우리는 과일 하나를 먹는 방식에서도, 각기 다른 계절 감각과 미각의 취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딸기의 제철은?

많은 사람이 겨울을 딸기의 제철로 알고 있지만, 자연 그대로 키운 노지 딸기의 진짜 제철은 5∼6월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시설원예(비닐하우스) 기술의 발달과 11월부터 수확이 가능한 ‘설향’ 품종이 2005년 개발되면서 ‘겨울-봄 딸기’가 대세가 되었다.

특히 겨울딸기는 낮은 온도 재배와 긴 성숙 기간으로 당분 함량은 높고 신맛이 적은 편이다. 국내에서만 주로 소비되던 딸기가 최근엔 저장성과 수송 기술이 함께 발전하면서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으로 수출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직접 수출이 아니어도 설향과 같은 품종은 미국이나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재배되며 로열티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딸기는 높은 당도와 품질로 ‘가장 맛있는 프리미엄 과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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