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호헌(護憲)은 개헌(改憲)의 반대로 현재의 헌법을 지킨다는 뜻이다. 헌정사에서 호헌도 개헌만큼이나 정치적 파란을 일으켰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가 대표적이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요구가 각계에서 터져 나와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발족하기에 이르렀지만, 정권 연장을 위해 호헌을 주장했다. 그 호헌 철폐 구호가 전국적인 6월 항쟁을 점화했고 개헌을 가능케 했다.

그 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개헌론이 제기됐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늘 호헌의 승리였다. 여야 없이 대선 승부의 유불리에 따라 헌법 개정에 대한 전략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국 선거를 2년마다 치르도록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 전제된 개헌의 경우 호헌 강도가 더 셌다. 2017년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 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에 찬성하다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하자 “대청산을 해내려면 5년도 짧다”고 거부했다. 반면, 안희정 충남지사를 제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은 찬성했다. 그때 호헌을 비판한 인사는 손학규 국민의당 대표였다. “개헌 반대는 제왕적 대통령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고, 그게 호헌이고, 호헌은 수구파의 논리다.”

8년이 지나 다시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론이 나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분권형 개헌을 먼저 하고 나머지 과제는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2차 개헌으로 추진하자며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때맞춰 정대철 헌정회 회장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국회 선출 책임 총리제와 헌법 개정 절차 간소화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에 동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대표는 2017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제대로 된 정치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임기 단축은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고 했고, 지난 2022년 대선 때도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2년마다 치르도록 임기를 조정해야 한다”며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냐”라고 했었다.

그랬던 이 대표가 7일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개헌을 거부했다. 국민투표법 등을 문제 삼았지만, 개헌 식언(食言)마저 이제는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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