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관세 전쟁과 별개로 세계질서 주도권 대결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미 국방부는 이른바 ‘잠정 국가방위전략’(NDS)을 통해 ‘중국의 대만 공격을 막는 것’이 ‘미 국방부의 최우선 대응 과제’라고 명시했다. 이 문건에서는 ‘중국의 대만 점령을 기정 사실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동시에 미국의 본토를 지키는 것이 미 국방부의 유일한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이에 중국은 보란 듯이 지난 1∼2일 대만 포위 훈련을 강행했다. ‘해협뇌정(海峽雷霆·천둥)-2025-A’로 명명된 이 훈련에서 동부전구(戰區) 주도로 대만을 완전히 포위하고 장거리 실탄사격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중요 항구와 에너지 설비 등 모의표적에 대한 정확한 타격에서 예상한 결과를 얻었다고 중국 측은 발표했다.
애초 미·중 대립의 발단은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몽이란,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초한전(超限戰) 전략을 추진한다. 이에 미국은 아시아 회귀전략(Pivot to Asia)을 구사하며 중국 견제에 적극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2.0시대에 접어들어 대결 양상은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와 손잡고 시진핑 견제를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중국의 맞대응으로 대립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중 양국 대결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양국은 한국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주목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주도권 회복이다. 즉, 1895년 청일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미동맹의 고리를 끊거나 약화시켜야 한다. 2016년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중국이 대한민국에 가한 한한령(限韓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으로 기우는 것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중국이 북한 핵 문제 협상 과정에서 내세우는 이른바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역량 강화와 한미연합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은 북핵을 미끼로 한미동맹을 흔들어 보려는 속내이다.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사드 배치를 막지 못한 것은 물론, 오랫동안 공들여온 대중(對中) 호감을 단번에 날려 버리고 한국민의 중국에 대한 불신만 키웠을 뿐이다.
지난해부터 중국은 한국과의 고위급대화를 회복하고 한·일·중 3자회의 호응, 한국 국민의 무비자 중국 여행 허용, 에이펙(APEC) 정상회의 시 시진핑 방한 등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더욱이 미국의 관세 폭탄이 떨어지자 한·일 등을 반미 공동전선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는 중국에 한국이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진정 중국이 한국과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양국이 대등한 관계에서, 중국은 한미동맹을 인정하고 북한 비핵화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도록 요구해야 한다. 한·중 관계를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에 있어 한미동맹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수행의 핵심축(린치핀)이라 할 수 있다. 평택 주한미군기지는 중국 본토를 직접 겨누는 비수와 같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잠정 국가방위전략 시행으로 주한미군이 대만 분쟁에 투입되는 등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본격화하고 우리를 향한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비록 잠정 전략이지만, 미국의 전략대로라면 북한의 위협 대응은 한국이 맡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비핵국가이다. 재래식 전력에서는 북한에 우위를 갖고 있지만, 북한 핵에 대응한 핵우산과 확장억제는 미국이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한반도 방위를 넘어 중국 억제 등에 활용된다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한국이 더 많이 내놓으라는 명분이 약해진다. 북핵 대응을 한국에 맡긴다면 미국은 전술핵 배치 또는 핵 공유 등 확장억제의 실효성과 신뢰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는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