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온 후 모처럼 평온을 되찾은 주말 아침이다. 김밥과 물병을 배낭에 담고 홀로 상춘의 산행에 나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초목과 꽃들의 환한 표정을 렌즈에 담느라 자주 갈지자걸음을 한다. 반석에 앉아 먹는 한 끼의 단사표음(簞食瓢飮·도시락과 표주박 물)도 산중 별미이자 식도락이다.
배추흰나비인가, 조그만 녀석 하나가 유희하듯 곡예비행을 하면서 스쳐 지나간다. 현실인데도 몽환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 한 화면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나비 작가 허경애의 화면이다. 엠갤러리 초대전을 준비 중인 작가의 작업실엔 고결한 영혼의 희망과 평화를 담은 나비들이 춤추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수묵화처럼 온화하고 담백하다. 그러면서도 약동하는 생명력을 일필휘지의 시원시원한 필치에 담고 있다. 아울러 봄의 화사함을 담은 추상성 속에 춤추듯 선회의 궤적을 남기며 나비가 날고 있다. 현실과 꿈, 자아와 세계 등을 자유롭게 넘나듦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분열과 반목을 넘어 희망만이 가득하길.
이재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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