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 상황을 담아낸 1967년 작 ‘도시계획백서 67’. 아트선재센터 제공
경제발전 상황을 담아낸 1967년 작 ‘도시계획백서 67’. 아트선재센터 제공

초기 접합 작품인 ‘접합 74-17’(1974).아트선재센터 제공
초기 접합 작품인 ‘접합 74-17’(1974).아트선재센터 제공

캔버스 뒷면을 철조망으로 두른 ‘작품 73’(1973).  아트선재센터 제공
캔버스 뒷면을 철조망으로 두른 ‘작품 73’(1973). 아트선재센터 제공


아트선재‘하종현 5975’展
1959~1975년 40여점 선봬
마대 천 활용한 ‘배압법’과
연작‘접합’ 탄생 과정 조망

국제갤러리, 하종현 개인전
2009년 이후 30여점 전시
다양한 원색의 접합 돋보여
자유분방한 실험 정신 가득


‘하종현 vs 하종현’. 동시에 열리고 있는 하종현(89) 작가의 전시 두 개를 한마디로 규정하면 이것이다. 하나는 아트선재에서 기획한 ‘하종현 5975’로, 1959년부터 1975년까지 작업한 작가의 초기작 40여 점이 출품됐다. 다른 하나는 국제갤러리의 ‘하종현(Ha Chong-Hyun)’전. 2009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에선 하종현의 전매특허이자 그가 창시한 ‘접합’ 연작의 태동과 발전을, 국제갤러리에선 재발견과 탐색을 통해 진화시킨 ‘이후 접합’ 연작을 살펴볼 수 있으니, 단색화 거장 하종현의 시작과 현재를 마주하고, 미래까지 엿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작가는 시대에 상응하며 형식적 변모를 꾀해왔다. 따라서 두 전시는 그 지난한 탐구와 실험의 나날을 펼쳐 놓은 것과 같다. 그 속을 비집다 보면, 조심스레 상상하게 된다. 불세출의 화가가 어떻게 탄생해 어디로 가는가.

2024년에 완성한 ‘접합 24-52’. 국제갤러리 제공
2024년에 완성한 ‘접합 24-52’. 국제갤러리 제공

질감과 붉은 원색이 생생한 ‘접합 23-74’(2023).  국제갤러리 제공
질감과 붉은 원색이 생생한 ‘접합 23-74’(2023). 국제갤러리 제공

‘접합 23-93’(2023).  국제갤러리 제공
‘접합 23-93’(2023). 국제갤러리 제공


◇‘하종현 5975’… 격동의 현대사와 상호작용, 회화의 평면성을 넘다

아트선재의 전시는 하종현을 새롭게 ‘배우는’ 자리다. 그의 작품 세계로 발을 들인다면, 우선 ‘배압법’을 알아야 한다. 마대로 된 캔버스 뒷면에 물감을 칠한 뒤 이를 주걱으로 밀어 넣어 앞면까지 튀어나오게 하는 방식이 그가 창시한 배압법이고, 이것으로 완성한 작품이 바로 ‘접합’ 연작이다. 이제는 하종현 하면 곧 접합이 됐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접합 탄생 전후를 파악해 ‘다채로운 하종현’을 보여준다. 회화의 평면성을 뛰어넘고자 한 작가의 철학이나 그림만큼이나 전시도 입체적으로 구성됐다. 예컨대, 1959년 홍익대를 졸업한 하 작가의 1960년대 초 작품들은 다소 어둡다. 한국전쟁 후의 불안한 현실처럼 말이다. 작가는 당시 그림에 불을 그을리기도 하고, 실을 붙이는 등 점차 입체감에 몰입한다. 1960년대 후반의 변화는 경제가 발전하던 사회적 분위기와 닿아있다. 단청 문양과 오방색이 등장하고, 캔버스를 자르거나 구부리는 등 역동성을 띤다.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해 회장에 오른 작가는 1970년대엔 더욱 과감해진다. 철조망, 못, 스프링, 신문지 같은 일상의 재료를 활용해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실험했으며, AG와 함께 전위미술에도 주력한다. 작가에겐 단색화로 향하는 길목, 한국 미술계엔 큰 전환점이 마련된 시기다.

이윽고 전시는 작가가 독창적인 배압법을 고안하게 된 과정을 드러내고, 1974년 시작한 접합 연작으로 귀결된다. ‘하종현 5975’가 일단락되고, 작가의 작품 세계가 새 막을 연 것이다. 이달 20일까지, 관람료는 1만 원.

국제갤러리에 전시 중인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21-510’(2021) 앞에서 하종현 작가가 설명하고 있다.
국제갤러리에 전시 중인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21-510’(2021) 앞에서 하종현 작가가 설명하고 있다.


◇‘하종현(Ha Chong-Hyun)’…“만선의 기쁨” ‘이후 접합’으로 이어지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접합 최신작을 대거 공개했다.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최근 1~2년 새 완성한 작품도 다수여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색과 기법에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는데, 초창기 ‘접합’이 마대에 흰 물감으로 대표된다면 점차 빨간색, 파란색 등 다양한 원색의 접합을 시도한다. 배압법으로 캔버스에 튀어나온 물감 역시 그대로 두지 않았다. 작가는 이를 긁거나 덧대거나 하며 더욱 다양한 효과를 냈다.

신작은 이러한 다채색 ‘이후(Post) 접합’ 작품이 대부분이다. 일상의 색까지 잔뜩 가져온 이 작품들은 무척 밝고 따뜻하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여느 때보다 자유롭고, 틀에서 해방된 작가를 만날 수 있다”고 평했다.

2009년부터 ‘이후 접합’을 시작한 작가는 당시 이를 두고 “만선(滿船)의 기쁨”을 표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캔버스라는 배는 무엇을 가득 품었나. 출품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단 그 방식의 정교함에 감탄하게 된다. 작가는 나무 화판을 조각으로 자른 뒤 캔버스 천으로 감싸고, 이를 다시 배열한 뒤 화판 틈마다 물감을 짜 넣고 눌렀다.

자유분방하지만 사전에 계산된 듯한 미묘한 사선 형태의 붓 터치. 2차원을 넘어서려는 화면엔 색이 만들어낸 율동감이 생생하다. 이쯤 되면 작가 하종현의 우주는 모든 가능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회화에 대한 고정관념과 기존 관행을 전복하고자 한 부단한 시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전시장은 그 자체로 하종현의 실험 정신이 가득한 예술적 ‘만선’이다.

이미 예술적 성취를 충만하게 이룬 대가로부터 여전히 시대와 예술을 ‘접합’하려는 의지를 보는 것. 시대의 산물이면서, 시대를 품은 ‘현대 미술’의 존재 이유이자 이를 감상하는 목적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내달 11일까지, 관람은 무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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