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움미술관 한국화보존팀 한종철·남유미·강규성
美 박물관서 올 땐 오염도 심각
미세한 구멍 한땀 한땀 메우고
가속 노화로 200년 된 비단 구현
어렵게 복원했지만 순서를 몰라
北 평양 위성지형 보며 재구성
과거 급제 축하잔치란 사실 확인
美, 보물인정 GPS달아 배송 요청
단순히 겉모습 복원하는 일 넘어
문화유산가치 되찾을때 가슴벅차
국내 사립미술관 중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리움미술관은 보존처리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다. 특히 단 세 명으로 구성돼 일당백 실력을 자랑하는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한국화보존팀은 드림팀으로 불린다. 25년 경력의 남유미 보존연구실장을 필두로 서화 중에서도 특히 병풍 복원 분야에서 입지전적 경력을 가진 30년 경력의 한종철 수석연구원,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막내라지만 다른 현장이었다면 한 팀을 이끌고도 남을 15년차 강규성 책임연구원까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국외소재 문화유산 보존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3월 사립미술관 최초로 해외 박물관 소장 유물인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를 복원해 공개한 한국화보존팀을 미술관의 최고 보안 공간인 보존연구실에서 최근 만났다.
◇들어보지도 못한 1만 개 구멍…한 땀 한 땀 메워 되찾은 보물급 유산의 진면모
“전자보안 장치까지는 달지 않았던 유물인데 돌려줄 때는 GPS를 달아서 보내달라고 합니다. 온전한 모습을 되찾으니 보물급 유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죠. 우리의 작업이 겉모습을 복원하는 일을 넘어 유물의 진정한 가치를 되찾아줬다는 사실로 느껴질 때, 보존처리 전문가로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에요.”
한국화보존팀은 미국 피보디에식스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위해 맡긴 병풍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를 처음 마주한 2023년 11월 13일을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보존연구실에 도착한 유물의 상태가 상상 이상으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강 연구원은 “박물관에서 과거에 찍은 저화질 사진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미세한 구멍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며 “오염 상태도 심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 연구원 또한 “이렇게 구멍이 많이 난 유물은 도통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만 개도 넘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세어보니 정말 1만 개가 넘더라고요.” 숙련된 전문가 셋이 모여 주말도 반납해가며 구멍을 메웠지만 구멍을 메우는 일에만 3개월이 넘게 걸렸다. 남 실장 말처럼 ‘복원의 가장 큰 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잠깐, 그들은 어떻게 지름이 채 5㎜도 되지 않는 1만 개 구멍의 숫자를 헤아렸을까. 더욱이 하나의 구멍을 메우는 일에 10∼15분이 걸린다면 단순히 계산해봐도 7∼8개월은 소요됐어야 하는데 3개월이라는 기간은 의아하기만 하다.
비밀은 발상의 전환에 있었다. 한국화보존팀은 과감히 그림의 사진을 찍어 미세한 구멍의 크기와 모양을 추출했다. 기술의 힘을 빌려 일일이 모양을 따는 과정을 간소화했고 이후 보존 소재를 오려내 붙이는 작업에 매진한 것이다. 남 실장은 “기술적 실험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해냈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나 이내 “다른 작업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져 복원의 완성도는 떨어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완성된 작품을 보며 남 실장은 “국보까지는 몰라도 지정문화유산급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고 자부했다. 보물급 유물이라는 것이다. “유일본이라는 점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한 폭의 가로 길이가 60㎝에 이르는 병풍은 보물인 화성행행도(수원능행도)와 비교할 만합니다. 물론 묘사의 섬세함에서는 따라갈 수 없겠지만요.”
◇첨단 기술 총동원…日 원자로까지 들어갔다 온 비단으로 200년 세월 건너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는 대나무 종이인 죽지(竹紙) 위에 성긴 비단인 견(見)을 덧대 그려졌다. 200년 된 비단의 느낌을 위해 한국화보존팀은 1년에 단 두 번만 진행되는 일본 원자로 ‘열화’ 처리를 감행했다. 오늘날 제작된 비단을 인공적으로 가속 노화시킨 셈이다. 이후에는 비단 염색이 이뤄졌다. 오리나무 열매, 도토리 껍질 등으로 3개월간 실험을 거듭했다. 남 실장은 “도토리가 수확된 해와 계절마다 다른 색을 낸다”며 “심지어 작업자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색이 달라지니 단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화보존팀의 복원 디테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존에 사용된 죽지 성분 분석 결과에 현미경을 들이밀었다. 보통은 섬유 조직을 확인해 종이의 종류를 판별하는 과정이다. 남 실장은 “섬유 가닥에만 집중했다면 놓칠 수밖에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며 “섬유 사이로 보이는 아주 작은 하얀 점, 그건 쌀가루였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도 “30년 동안 쌀가루를 섞어 만든 종이를 병풍에 사용했다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거들었다. 쌀가루와 대나무를 1대 1 비율로 섞어 만든 특수한 종이가 사용된 것이다. 강 연구원은 “쌀가루를 섞어 종이를 만들면 종이가 불투명해져 위에 얹혀지는 그림의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복원에 완벽을 기한 것이다.
◇인공위성 비교 사진으로 찾아낸 병풍 순서, 유물의 진짜 이름
8폭의 병풍은 순서도 없이 낱장으로 맡겨졌다.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을 통해 공개될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전시 도록에 소개된 유물의 이름은 ‘평안감사환영도’. 복원을 거치며 지금의 순서와 새로운 이름을 찾게 됐다. 남 실장은 낱장으로 들어온 그림이라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림을 병풍에서 떼어내면 뒷면에 순서와 관련된 기록, 숫자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강 연구원은 “배접지를 모두 제거했는데도 순서의 단서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며 “일단 복원이 급하니 작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복원이 완료되자 순서를 찾아야 했다. 문제는 그들이 추측한 순서가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연구해 추측한 병풍의 순서와도 달랐다는 것. 남 실장은 “연회 도중 비가 온 것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급제자들이 평양성에 들어오기 전과 연회가 펼쳐지는 도중, 끝난 후 하늘의 색, 땅의 색이 다르다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듯한 하늘과 젖은 흙의 빛깔 등이다.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지금도 북한 평양 지역의 주변 지형을 위성지도로 직접 추적했다. “걸음 수까지 계산해가며 환영 행렬의 동선을 그려봤어요. 덕분에 8장의 병풍을 일렬로 맞출 수 있었죠.” 병풍의 바탕에 사용되는 비단과 장황(裝潢)까지 제작한 뒤에야 발견한 것도 있다. 한 연구원은 “횃불”이라고 말했다. “연회가 해 질 녘까지 계속되자 횃불을 밝혔는데 그게 점점 활활 타오르다가 마지막 장에 이르면 작아져요. 우리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평안감사의 부임을 환영하는 그림이라고 생각되던 것을 도과 급제자를 축하하는 잔치라며 ‘도과 급제자 환영도’라는 새 이름을 붙인 것도 이들이다. “그림을 모두 복원하고 보니 두 명의 주인공이 더 있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평안감사향연도’에는 감사만 등장하지만 이 그림에는 급제자 2명이 더 있었죠(웃음).”
병풍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의뢰로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처리한 ‘피보디에식스박물관 소장 활옷’과 함께 지난 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공개됐다. 짧은 한국 여행을 마친 유물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오는 5월 재개관하는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 ‘유길준갤러리’에서 재공개될 예정이다.

■ 보존 드림팀의 새로운 목표
“해외에 흩어진 고려 불화, 고유의 기술로 보존 처리하는 게 꿈”
“외국에서 소장 중인 일본·중국 미술의 족자, 병풍은 굉장히 관리가 잘돼 있어요. 보존에 작은 문제만 생겨도 제작된 국가를 믿고 다시 맡기기 때문이에요. 한국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본 미술계로부터도 ‘제대로 보존했구나’ 하는 반응을 듣고 싶어요.”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한국화보존팀은 피보디에식스박물관 소장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를 복원하며 결과물의 완성도만을 생각했다. 최고급 재료부터 새로운 기술까지 총동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유미 보존연구실장은 “여러 선배·동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종철 수석연구원은 “이만큼 어려운 복원 작업을 해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며 포부를 밝혔다. 30년 경력의 보존처리 전문가가 꿈꾸는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고려 불화’라고 답했다. “국내에서 소장 중인 고려 불화는 모두 국보입니다. 그만큼 관리도 매우 잘돼 있죠. 보존처리 전문가가 뜯어볼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해외 박물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고려 불화를 고유의 기술로 보존처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화보존팀은 조금 다른 포부도 밝혔다. “해외의 모든 박물관에 한국미술 보존 전문가가 있을 수는 없잖아요. 작은 박물관의 소박하고 소중한 유물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쳤으니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한국화보존팀은 벌써 새로운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려 열 폭에 이르는 ‘묘향산도’ 병풍이다. 묘향산을 그린 그림 자체도 희귀한 편이지만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해당 유물처럼 병풍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국내외에 전하는 바가 더욱 희귀하다. “새롭게 발견될 유물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고쳐 새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여전히 많으니 계속해야죠. 꿈의 작품을 만날 때까지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 용어설명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의 역사는 1989년 호암미술관에 만들어진 ‘보존과학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금속유물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연구원 2명으로 시작했다. 이후 1994년 한국화보존분야를 신설했다. 한국화보존팀은 주로 조선 시대의 글과 그림부터 근현대 동양화 작품까지 다루며 형태로는 병풍, 족자, 횡권, 전적, 화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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