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모여라’ 하면 얼른 뛰어와 작은 앵글에 여덟 얼굴을 다 담기 위해 다닥다닥 모여 ‘하나 됨’을 보여주는 우리 가족.
카메라를 들고 ‘모여라’ 하면 얼른 뛰어와 작은 앵글에 여덟 얼굴을 다 담기 위해 다닥다닥 모여 ‘하나 됨’을 보여주는 우리 가족.


■ 사랑합니다 - 어머니와 함께한 여덟 식구 베트남 여행 <상>

이번 여행의 목적은 고집불통 엄마와의 해외여행이었다. 무슨 고집인지 절대 해외여행은 안 가겠다며 우리나라도 갈 곳 많고 좋은 곳 많다는 타협 안 되는 애국심 덕분에 온 식구가 다 나서서 할미를 설득하는 데 적잖은 노력을 쏟았다.

우선 큰 아이는 본인이 취업이 되고 나면 언제 또 이런 시간이 날지 모른다며 할머니를 설득했다. 둘째는 역시나 내년에는 학교를 다시 가야 하니 휴학 기간에 같이 여행을 가자며 꼬셨다. 그리고 초3 조카는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로 할머니 마음을 돌려세웠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해외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할 텐데 자기는 어떡하냐며 할머니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 세 놈 다 할머니 안 가면 우리도 안 간다며 마지막엔 협박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나는 나대로 엄마 주위의 친구분들이나 이모들이나 그 댁 자제분들과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미안하던 참이었다. 일찍 혼자되어 자식 키운 보람이 있네 하는 그 말 한마디로 마치 자식 된 도리를 다한 양 생색내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키워봐야 소용없다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 입장은 안중에도 없던 엄마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손자들의 아우성에는 “내가 손자들 때문에 못 산다” 하며 여권 사진을 찍는 것도, 여권을 만드는 것도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울 엄마.

그렇게 큰 그림은 그려졌고 달력에는 1∼31까지 쇠털같이 많은 날이 있었지만 여덟 식구 모두가 만족하는 날짜를 잡는 게 또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생네 부부가 회사를 빠질 수 있는 날짜를 우선으로 조율했다. 엄마 마음이 바뀌기 전에 지구가 반쪽 나도 가야 하는 날짜가 정해졌다.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 하는데 큰아이가 베트남을 이야기한다. 친구들과 가 본 결과 할머니가 많이 힘들지 않게 가실 수 있을 것 같다 한다. 웬만하면 다녀온 곳 아닌 새로운 곳을 가고 싶어 할 만한데 우리 아들 참 마음이 좋다 싶다. 장소까지 정해졌다. ‘다낭’으로. 날짜며 장소며 우리가 정하고 ‘가자’ 하니 ‘좋다’ 하는 동생네도 참 무난하다 싶네.

시작이 좋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딸아이가 일정표를 짜고 식당예약 미리 하고 우리가 손댈 것 하나 없이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었다. 늘 든든하고 믿음 가는 따님이시다. 그런 여동생의 계획에 또 이런저런 군말 없이 다 따라주는 아들 역시 참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생이랑 남대문 시장에 가서 꽃무늬 우리 옷도 사고 엄마 옷도 여러 벌 샀다. 엄마 신발이랑 모자랑 수영복까지 신나는 백화점 쇼핑도 했다. 준비를 하며 더 여행의 기분을 내고 신나 한 시간들이었다. 엄마 역시 딸들의 신남이 느껴지시는지 이런저런 기운 빠지는 말씀 한 번 없이 옷도 예쁘다 하고 신발도 편하다 하고 모자도 맘에 든다 하셨다. “그렇지, 그렇게 좋아라 하고 맘에 든다 해야 하는 사람 신나고 기운 안 빠지지” 하며 칠순 넘은 엄마를 기특해한다.

여덟 식구의 이동은 때론 화기애애하고 때론 한 무더기 대이동이었다. 비행기를 탈 때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이모의 농담을 법 지키듯 지키려는 조카와 그러는 거 아니라며 놀라서 말리는 동생을 보며 또 한바탕 박장대소를 한다. 귀가 이상하다는 조카에게 침을 계속 삼키지 않으면 귀에서 피가 난다는 이모의 겁박에 계속 꿀떡꿀떡 삼키는 조카가 마냥 재밌다. 뭐니 뭐니 해도 이모를 맹신하는 조카를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는 “딸 두면 비행기 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는 말로 만족함과 고마움을 표현하신다. 그러면서 먼저 간 느이 아버지가 불쌍하지 하신다. “엄마! 아버지는 엄마보다 훨씬 먼저 하늘을 날았어” 하며 애써 무거워지려는 공기를 걷어버렸다. 누군가는 푼수 역할을 맡아야 심각해지지 않는 건 우리 집 무언의 룰이었다.

하유경(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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