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한미 FTA도 무력 0%대 성장 속 2분기 최악 우려 美 관세 억지 많아 빅딜 여지 커
투자 여력 고갈, 對美 카드 비상 野 친노동·반기업 가속화 태세 총체적 위기 속 민관 원팀 필수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5일 보편관세에 이어 9일부터는 상계관세가 발동된다. 우리로선 억울하고 가혹하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20개국 중 관세가 25%로 가장 높다. 한미FTA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캐나다·멕시코가 FTA 적용 품목에 대해 면제받은 것에 비하면 더욱 불공정하다.
미 관세는 억지도 많다. 한국의 관세가 13%로 미국의 4배라는 주장부터 잘못됐다. FTA에 따라 양국 거래는 대부분 무관세로, 미 수입품 관세율은 평균 0.79%에 불과하다. 또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최악’이라고 공격했지만, 상당수는 국제관행 아니면 국가의 주권에 속한다. 대규모 무기 구입 때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외국인 원전 소유 제한, 분단 특수성에 입각한 위치 기반 데이터 통제 등이 그렇다. 미국과의 재협상은 불가피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인사가 미 관세는 ‘협상 신호탄’이라고 언급한 것은 주목된다. 정권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이 국내 세미나에서 “상계관세는 협상을 거치면서 바뀔 것”이라며 “유럽과 달리 한국은 협상 과정에서 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에 아쉬운 조선업과 알래스카 LNG 개발사업을 거론했다. 앞으로 협상에서 활용하라는 조언이다. 미 관세 조치는 주먹구구식 세율 산정부터 허술한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만큼 협상으로 개선할 여지 역시 크다.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미국에 협상 의사를 밝힌 나라가 70개국이라고 한다. 협상의 골든 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
협상은 발등의 불이다. 올 성장률 전망치는 0%대까지 추락했다. JP모건이 1.2%에서 0.9%, 다시 0.7%로 낮춘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의 전망치는 평균 1.4%지만, 4월에 발표된 미 관세가 반영되면 0%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는 이미 초비상이다. 건설을 비롯한 내수가 극히 부진한 가운데, 홈플러스 등의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고, 대그룹·중견 그룹들이 속속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판이다. 미 관세 여파로 한국GM은 지속성조차 의문시된다. 제조업 공동화 우려에도 노동계는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며 툭 하면 파업이다. 현대제철 인천공장은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런 지경에 대통령 공백 속에서 6·3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미 보편·상계 관세에다, 반도체 관세까지 시행되는 2분기는 최악의 성적표가 나올 우려가 크다.
간판 기업마저 투자 여력이 거의 고갈된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정부에 총 31조 원의 투자 계획을 내놨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및 배터리 업체 등은 이미 조 바이든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에 끌려 미국과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터라, 추가 투자가 쉽지 않다. 대미 카드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나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경제안보전략 TF를 가동하는 등 안간힘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동력이 떨어지고, 6·3 대선까지 두 달도 안 남은 대행 체제에서 실효 있는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사력을 다해야 한다. 특히, 대미 협상에선 삼성·SK·현대차·LG 등 세계적 수준인 기업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축적된 노하우를 100%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관 원팀은 필수다. 대기업·중견기업의 투자 여력을 쥐어짜 모은 카드로 미국과 빅딜을 해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유례없는 총체적 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사즉생’을 강조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이 모든 분야에서 앞서간다며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고 우려했다. 세계가 경탄했던 경제의 기적을 이뤘던 대한민국이 이제 후퇴할지 모를 전환점에 처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그러나 정치권은 달라질 기미가 없다. 무능한 국민의힘은 분열로 자중지란이고, 국회를 지배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노란봉투법·법정 정년연장에, 이미 거부권이 발동된 상법개정안 재추진 등 친노동·반기업 입법을 더 가속화할 태세다. 정년연장TF는 이미 출범했다. 그러면서 여야정협의회는 외면한다. 책임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6·3 대선 경쟁으로 경제는 앞이 더 안 보이게 생겼다. 정치를 바꾸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