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율리아 에브너 영국 옥스퍼드대 폭력적극단주의 연구소장
“디지털 기술·정치 위기 만나
혐오 등 악용 포퓰리즘 만연
특정 진영논리 빠지지 않게
지속적 소통·팩트 체크 중요”
“한국은 정치적 위기를 넘어 극단주의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발생했던 테러 예고와 사이버 폭력 등 극단적인 행동들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며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율리아 에브너(33)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적 응집력 연구 센터 산하 폭력적 극단주의 연구소장은 8일 문화일보와 진행한 화상·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에브너 박사는 극단주의 집단과 현상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기구와 기업 등에 자문하고 있는 정치학자다. 그가 10여 개의 극단주의 단체에 잠입해 디지털 사회에서 극단주의 단체가 어떻게 세력화하는지를 연구한 저서 ‘한낮의 어둠(2019)’은 2020년 오스트리아 ‘올해의 인문사회과학 책’ 등으로 선정됐다. 앞서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연구한 저서 ‘분노(2017)’로 2018년 브루노-크라이스키 저술상을 받았다.
에브너 박사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발생한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을 두고 “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주의 행동 양상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평했다. 그는 “특히 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온라인에 올라온 살인·테러 예고 등은 전형적 극단 행동”이라며 “음모론과 ‘파묘(특정인 신상털이)’ 등 사이버 폭력도 극단주의 행동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탄핵 국면에서 극단적인 행동이 유독 많이 보였던 것을 두고 정치적 위기 속에서 위협감을 느낀 일부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빚어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망을 잘 갖춘 한국의 환경에서는 누구든 극단주의 단체를 쉽게 조직하고 허위 정보를 퍼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행동하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극단주의 단체들이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모집하고 움직인다”며 “서부지법 난동 사태 수사 대상으로 언급됐던 ‘MZ자유결사대’와 유사하게 온라인에서 미리 공모하고 오프라인에서 움직이는 경우도 다수”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 텔레그램 등에서 발생하는 ‘산발적 극단주의’의 위험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에서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아무렇지 않게 확산하고 있더라”며 “유머 요소가 있는 밈(meme) 등과 합쳐져 음모론과 혐오를 ‘놀이 문화’와 같이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사진 합성이나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한 음모론은 사실을 덮어버려 음모 세력에게 유리하도록 ‘권력의 역학(power dynamics)’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론 정치적으로 과열될 수 있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영 논리와 선거 전략이 쓰이는 선거 국면에서 각종 극단적인 캠페인이나 활동이 폭증하곤 한다”며 “특히 최근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탄핵된 사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더욱 극단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에브너 박사는 극단주의를 정치에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대중의 관심은 생명과 같다”며 “이러한 관심을 얻기 위해 자극적인 음모론과 혐오 발언을 악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갈라치기를 일삼는 ‘극단주의를 악용한 포퓰리즘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초기에는 소수의 극우·극좌 정치인들이 이런 식의 정치를 했겠지만, 온라인상에서 유튜버 등이 동원돼 이들의 스피커가 점점 커지면서 다른 정치인들마저도 이에 휩쓸리곤 한다”며 “종국에 ‘극단주의 정치의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브너 박사는 극단주의를 경감하기 위해 지속적인 소통과 팩트체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특정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다수를 아우를 수 있도록 공통 의제에 대해 계속 얘기하되 특정 소수의 불만에 대해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며 “언론은 공정한 선거를 방해할 수 있는 음모론·허위 정보 등을 계속 발굴하고 팩트체크를 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린아 기자 linay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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