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 내에서 운행되는 자율주행 택시의 내부 모습. 운전석은 텅 빈 채 뒷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 적힌 ‘운행 시작’ 버튼을 누르니 택시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 내에서 운행되는 자율주행 택시의 내부 모습. 운전석은 텅 빈 채 뒷좌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에 적힌 ‘운행 시작’ 버튼을 누르니 택시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Global Focus - 일상 곳곳 첨단기술 파고들어

3000㎢에 자율주행시범구 지정
무인택시 비보호 좌회전 등 척척
현재 900대 운영, 150만명 이용

드론으로 만리장성에 음식 배달
로봇개는 산으로 성묘음식 날라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도 예정

中, 국가주도로 기술상용화 지원
정부·기업 앞다퉈 딥시크 적용


베이징=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지금부터 드라이버가 없는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안전 수칙을 준수해 주세요.”

7일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이좡(亦庄)경제기술개발구 안. 자율주행 택시에 올라타자 자리 앞에 마련된 모니터에서 이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운전석은 텅 빈 채,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를 모니터에 입력하자 차가 스르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율주행 택시가 도로를 달리고 무거운 짐을 로봇개가 실어 날라준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국가 주도 기술 발전에 힘입어 최근 각종 첨단기술의 테스트베드가 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이다.

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 내에서 운행되는 자율주행 택시.
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 내에서 운행되는 자율주행 택시.


◇무인(無人) 시대 여는 베이징 = 지난 7일 이좡경제기술개발구 내 난하이즈(南海子) 공원 앞.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자율주행 택시를 불렀다. 중국의 자율주행 기업 포니AI(Pony.ai, 小馬智行)가 운영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택시 호출 앱 디디추싱(滴滴出行)과 같은 방식으로 목적지를 입력한 뒤 택시를 호출하자 한 자율주행 택시가 잡혔고 약 8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다. 운전석에 운전기사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일반 택시 호출과 다를 바 없이 편리했다. 자율주행 택시의 운전 실력도 예상 밖에 훌륭했다. 중국은 좌회전이 비보호로, 좌회전할 차들이 사거리 중간에 미리 나가 있어 항상 혼잡하다. 그럼에도 자율주행 택시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심지어 앞서던 차량이 갑자기 유턴하는 상황이 발생해 자칫 사고가 날 뻔했지만 택시는 부드럽게 그 차를 피해 나아갔다. 15분 동안의 택시 요금은 26위안(약 5000원)으로, 보통 택시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이좡경제기술개발구는 중국 당국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첨단기술 제조업 밀집 단지로, 베이징 중관춘(中關村)과 함께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곳이다. 2021년부터 이곳에서 자율주행 시범 서비스가 시작됐으며 현재 약 3000㎢에 달하는 구역이 자율주행시범구로 지정돼 있다. 자율주행 택시 약 900대가 이곳에서 운행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최소 150만 명 이상이 자율주행 서비스를 이용했다. 실제로 이날 약 15분간의 운행 시간 동안 두 대의 자율주행 택시와 마주쳤다. 이좡에선 자율주행 택시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보통의 디디추싱 차량을 부르듯 여기선 자율주행 택시를 빈번히 이용한다. 담배를 피우는 기사가 없다 보니 차량도 무척 쾌적해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좡에선 순찰을 위한 자율주행 차량도 24시간 운행되고 있다. 거리 곳곳을 누비며 범죄, 화재 등 상황이 발생하는지 살핀다.

13일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 연습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매직랩 유튜브 캡처
13일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 연습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매직랩 유튜브 캡처


◇일상 깊숙이 스며든 신기술들 = 중국에서 ‘미래’는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택시 운전, 음식 배달 등 사람이 해오던 일이 점차 자율주행 차량, 드론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국의 대표 음식 배달 플랫폼인 메이퇀(美團)은 드론을 이용한 배달 시스템을 만들어, 만리장성에서도 드론으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배송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최근엔 중국에서 처음으로 드론 업체 이항(億航) 산하 광둥이항통항과 허페이허이항공이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으로부터 유인 민간 무인항공기 운영합격증(OC)을 받아 이슈가 됐다. 승인된 공역에서 두 회사가 상업 운영을 시작해 유료 승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약 2000만 원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 유니트리(Unitree·宇樹科技)는 지난 2월 대표 모델 G1을 온라인쇼핑 플랫폼 징둥(京東)닷컴에서 판매했는데 전량 매진됐다. 징둥닷컴에는 G1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판매 중이다. 1000위안(20만 원)짜리 장난감부터 수십만 위안(수천만 원)에 달하는 전문가용까지 다양하다. 오는 13일에는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참여하는 마라톤 대회가 베이징에서 열린다.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4~6일 봄을 맞아 조상들의 묘를 찾는 청명절(淸明節) 연휴, 중국 SNS에는 로봇개가 제사 음식을 나르거나 드론으로 제수(祭需)를 운반하는 모습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상자에 담긴 돼지구이를 실은 로봇개가 산을 올랐다. 산세가 험해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로 불리는 타이산(泰山)에는 인공지능(AI) 외골격 로봇이 도입됐다. 타이산문화관광그룹과 선전 켄칭테크가 공동개발한 이 로봇은 등산객의 허리와 허벅지를 감싸고 AI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등산할 때 다리에 실리는 하중을 덜어줘 등산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음식을 배달하는 메이퇀 드론의 모습.   메이퇀 홈페이지 캡처
음식을 배달하는 메이퇀 드론의 모습. 메이퇀 홈페이지 캡처


◇신기술 첨병, 많은 인구와 국가 주도형 기술 발전 영향 = 중국이 신기술들의 테스트베드가 된 데에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정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기술 발전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AI, 자율주행, 6세대 이동통신(6G) 등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국가가 주도하는 기술 발전과 응용은 신기술이 빠르게 상용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한다. 이는 딥시크의 예에서 여실히 드러났는데 올해 초 딥시크가 등장한 이후 각 지방정부는 물론 화웨이(華爲) 등 기술 기업이나 자동차 기업, 가전 기업 등이 모두 딥시크를 탑재하겠다고 나섰다.

14억 명의 인구와 거대한 시장을 가졌다는 점도 큰 이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기술이 실제 사용자들로부터 빠르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술을 개선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 자율주행이나 AI의 경우 대규모 데이터를 통해 학습이 빠르게 실행되고, 이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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