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꽃
옛 선조들 ‘진달래전’ 즐겨
철쭉은 먹고 배탈나 ‘주의’
튀르키예선 장미로 잼 만들고
유럽선 꽃대를 채소처럼 먹어
맥주의 쌉싸름한 맛 내는 ‘홉’
전세계에서 80종 넘게 재배
브로콜리·딸기도 꽃으로 분류
라벤더·국화는 허브티 주재료
만화방창(萬化方暢)에 화란춘성(花爛春盛)이다. 때늦은 꽃샘으로 춘래불사춘이라더니 이젠 그 말문이 막힌다. 온 누리가 꽃 천지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고 코끝을 간지럽히듯 향기롭다. 맛은 어떨까. 음식에도 꽃이 쓰인다. 보기에 좋고 향을 더할 뿐 아니라 달콤한 맛을 낸다.
인간은 보통 꽃을 그냥 먹기보다는 구경만 하고 내버려 뒀다가 열매를 맺으면 먹었다. 그게 이득인 줄 진작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니 먹을 수 있다면 그냥 먹었다. 그래서 꽃 식문화가 생겨났다.
진달래를 따서 연분홍 꽃잎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는 것은 가장 강렬하게 눈에 와 닿는 ‘꽃 식문화’다. 우리 선조들은 삼월삼일 삼짇날(올해는 지난 3월 31일이었다) 두견화(진달래꽃)나 이화(오얏꽃)를 따다 전을 지지는 화전놀이(꽃달임)를 했다. 분홍색 꽃잎을 선명히 박아 화려한 장식을 한 음식이니 봄날의 꽃놀이에 더할 나위 없는 운치를 제공했다. 꽃의 색이나 모양이 진달래와 똑 닮았지만, 철쭉은 먹으면 큰일이 난다. 독성이 있어 탈이 난다. 오죽하면 부꾸미로 부쳐 먹을 수 있는 진달래를 참꽃, 먹으면 배탈이 나는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을까.
아카시아로 잘못 알려진 아까시나무 꽃에도 꿀이 많이 들어있어 식재료로 즐겨 쓴다. 예전엔 그냥 꽃잎 송이를 우수수 입에 털어 넣고 씹어 먹기도 했다. 맛도 달았지만 향이 그리 좋았던 기억이 난다. 마침 4월이니 지금쯤 ‘동구 밖 과수원길’에 있을지도 모른다.
여름엔 연꽃차를 만들고 가을엔 국화로 전을 부쳤다. 국화는 요모조모 먹기에 좋다. 특히 달달한 향을 만끽하기 위해 황국화를 차로 만들어 즐긴다. 외래종 수레국화도 차로 우려먹는 꽃이다.
정향(clove)이나 사프란 같은 꽃처럼 향신료로도 쓰지만 어떤 꽃은 그냥 채소처럼 먹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식탁에서 만나는 브로콜리는 잎사귀 채소가 아니라 엄연한 꽃(봉오리)이다. 아예 이름부터 ‘꽃’이란 뜻이 든 콜리플라워(cauliflower)는 말할 것도 없다. 피어나기 직전의 어린 꽃봉오리를 그대로 먹는다.
역설적이게도 무화과(無花果) 나무에는 꽃이 많이 핀다. 이름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 유실수가 아니다. 무화과 열매로 알려진 그 자체가 꽃이다. 껍질처럼 생긴 꽃받침 속으로 꽃이 피어 열매처럼 보이는 것이다. 무화과를 먹는다는 것은 꽃이 핀 덩어리를 직접 먹어치우는 셈이다.

요즘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딸기 역시 생태적으론 비슷한 개념이다. 꽃을 피우고 난 후 꽃턱(花托)이 열매처럼 커다랗게 자라도록 개량했다. 딸기 표면에 무수히 박혀 있는 깨알처럼 생긴 것이 딸기의 진짜 열매다. 사정을 알고 나면 “아하!” 하고 놀란다. 원래부터 빨간색이고 밑에 꽃받침까지 붙어 있으니 통통한 꽃 그 자체로 보인다. 분류상으로도 딸기는 장미군 장미목 장미과(딸기속)에 속한다.
튀르키예에선 과일이 아닌 장미꽃잎으로 잼이나 차를 만들어 먹는데 먼 친척이라서 그런지 제법 딸기잼과 비슷한 맛을 낸다. 남유럽에서도 국화과에 속하는 아티초크의 꽃대를 채소처럼 먹는데, 꽃을 피워도 바로 그 아래 부분까지 먹을 수 있다. 녹색 꽃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꽃대다. 맥주의 주원료가 되는 홉(hop)도 꽃이다. 맥주에 특유의 향과 쌉싸름한 맛을 더하기 위해 홉의 암꽃을 쓴다.
맥주엔 홉과 보리, 물 이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한 독일의 맥주순수령 이후 맥주를 주조하는 이들은 맛있고 향기로운 홉을 생산하기 위해 튤립이나 장미 개량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 현재 80여 종이 넘는 홉이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훈제 연어와 함께 곁들여 먹는 케이퍼(caper)도 씨앗이 아닌 꽃봉오리다. 이를 후추 열매처럼 여기고 있는 이들이 많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카파리스 스피노사(Capparis spinosa)가 피기 전 꽃봉오리 상태에서 피클로 가공한 것이다. 기름진 연어에 개운하고 상큼한 맛을 더한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향신료로 손꼽히는 사프란(saffron)은 ‘사프란 크로커스’ 꽃의 암술을 채취해 말린 것이다. 개화기 꽃송이에서 암술대만 일일이 채취한다. 한두 가닥을 써도 샛노란 색을 내니 향도 향이지만 황금 색깔을 내기 위해 즐겨 쓴다. 원래 지중해 연안과 인도 서남부에서 주로 나는 것이다 보니 쌀 요리에도 많이 쓰는데, 그래서 스페인식 쌀죽인 파에야(paella)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하는 필수 향신료다. 요즘 금값이 하늘을 찌르지만 과거엔 ‘같은 질량의 금(金)보다 비싼’ 유일한 향신료로 알려졌다.
이렇게 따져보니 세상에는 은근히 식용 꽃이 많다. 향기가 좋으니 기호 음료에도 빠질 수 없다. 서양 요리에 많이 쓰는 허브(herb)는 풀이나 잎사귀 종류가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꽃도 있다. 주로 허브티(herbal tea)나 빵의 재료로 쓰인다. 꽃향기가 진한 라벤더, 히비스커스, 로즈플라워, 캐모마일, 국화 등이 허브티 재료로 주로 쓰는 꽃들이다.
꽃 허브 종류 중엔 샐비어(salvia)도 있는데 어린 시절 화단에서 꿀을 빨아먹던 사루비아 꽃이 바로 샐비어의 일본식 발음에서 나왔다. 향기가 진한 것으로 유명한 장미는 에센스로 추출해 다양한 음료나 제과에 썼다. 튀르키예의 전통 디저트인 로쿰(lokum) 중에는 장미수로 향을 낸 것을 고급으로 친다.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가을에 꽃송이째 따서 말린 국화차를 널리 선호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서 흔히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꽃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꽃은 뭔가 예쁘고 좋은 것을 이를 때 앞에다 붙인다. 또 꽃단장, 꽃노을, 꽃길, 꽃밭, 꽃사슴, 꽃가마, 꽃방석 등 명사에 갖다 쓰고 어떤 일이 화창하게 빛나고 번영할 때는 ‘꽃피우다’라고 말한다. 꽃다운 나이, 꽃처럼 죽다(散花), 꽃밭에서 자랐다 등 관용적 표현도 많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류니끄 = 항상 공감각적 다이닝 예술을 선보이는 류니끄의 봄 시즌 메뉴가 나왔다. 냅킨을 펼치는 순간, 봄이 식탁을 뒤덮는다. 웰컴 드링크로 장미 에센스에 탄산을 첨가한 수제 스파클링 에이드부터 시작한다. 총 9코스로 제공되는 제철 식재료들이 입춘대길을 외친다. 압권은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을 형상화한 6번째 디시. 유바로 감싼 도미와 가리비의 롤을 가운데 두고 당면과 감자를 튀겨 가지에 돋아난 꽃잎을 만들었다. 류태환 셰프의 미학이 강렬히 드러난 대목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8-1.
◇송도갈비 자하문점 = 전국 3대 갈비로 일컬어지는 송도갈비의 새로운 매장. 실제 꽃은 없지만 꽃등심이 예쁘게 피었다. 선홍색 한우 등심에 박힌 촘촘한 지방이 마치 흐드러진 꽃을 닮았다 해서 꽃등심이다. 숯불에 올리면 아지랑이를 피우니 마침 봄꽃이 피어난 들판과도 같다. 한 조각 잘라 입에 넣고 씹자면 따스한 육수가 봄비처럼 내려와 혀를 촉촉이 적시니 그야말로 흐뭇한 봄날이다. 고기 한 점 구워 먹고 계절을 떠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종로구 진흥로 493-5.
◇달콤꽃시루 = 꽃차와 꽃떡을 파는 집이다. 장흥읍 달콤꽃시루는 상호처럼 예쁜 공간에서 그보다 더 고운 떡을 만들어낸다. 떡을 빚고 찌는 공방이 내부에 있고 조용한 골목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향기로운 꽃차와 떡을 즐길 수 있다. 음료도 다양하지만 떡을 주로 내는 카페의 강점은 역시 차 종류다. 마리골드, 국화, 아마란스 맨드라미, 목련, 홍화 등 다양한 꽃차를 따뜻하게 즐길 수 있다. 입에서 꽃이 피어난 느낌. 미리 주문하면 앙금으로 모양을 낸 예쁜 케이크도 만들어준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부로 25.
◇연우김밥 = 꽃나물 김밥을 파는 집. 인근 자취생과 직장인, 단체에게 인기가 높다. 시그니처 메뉴인 연우김밥이나 명태김밥도 많이들 찾지만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꽃나물 김밥(키다리 나물)을 판다. 정식명칭은 삼잎국화, 꽃은 아니지만 이름에 꽃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히 아름답고 향기롭다. 아삭한 식감도 좋다. 전주에서 가져온 꽃나물 무침을 잘게 썰어 넣어 담백하고도 싱그러운 봄날의 맛을 가득 품었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9.
◇더 히말라얀 = 서울 종각의 네팔식 커리 전문점이다. 고급 향신료 사프란을 넣어 만든 밥인 사프란 라이스를 판다. 샛노란 색깔의 밥은 그냥 받아들기만 해도 식욕이 돋아난다. 팔락 파니르, 탈리 등 다양한 현지 정통식 커리와 치킨 등과 함께 사프란 라이스를 즐길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45-2.
◇백제향 = 통창을 통해 대나무 숲 사이로 스미는 볕을 감상하며 연꽃차를 즐길 수 있는 찻집이다. 도심에 위치해 여행 중 쉬어가기에 딱 좋다. 깨끗한 물에서 채취한 연꽃 송이에 직접 찻물을 부어주는 새벽연꽃차는 이 찻집을 유명하게 만든 메뉴. 찻물이 꽃술을 적시면 꽃잎이 활짝 펴지며 연꽃향이 피어난다. 시각과 후각, 그리고 미각을 충족시키고 여유를 찾으려 이곳을 찾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30번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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