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습격’ 무장공비서 북한 인권 전도사로 활동[부고]

김신조 목사, 83세로 별세
‘안보강연 1인자’로 불려

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투항해 귀순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새벽 83세로 별세했다.

김 씨는 26세였던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습격사건을 일으킨 북한 무장공비 31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무장공비들은 청와대 습격 지령을 받아 군사분계선 목책을 넘어 얼어붙은 임진강 등을 건넜다. 1월 21일 밤 자하문고개로 진입해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나무꾼에 의해 침투 사실이 사전 노출됐고, 곧바로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에 발각됐다. 청와대 진입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군경의 소탕작전이 벌어지자 김신조 일당은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쏘며 저항하다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124부대 소속 31명 중 29명이 사살됐고 1명은 도주해 북한으로 넘어갔다. 생포돼 귀순한 김 씨는 기자회견에서 임무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했다.

청와대 습격사건은 미수에 그쳤지만, 이 사건으로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 창설 △휴전선 155마일 전방 목책을 철책선으로 대체 △탱크 저지선 구축 △유격훈련 시행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교련 과목 도입 △군 복무 6개월 연장 등 사회 전반의 병영화가 확산했다. 그는 “김일성은 전선 없는 전쟁 수행 계획을 수립, 육상·해상·공중으로 특수부대를 일거에 침투시켜 한 달 이내에 남조선을 정복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마터면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할 뻔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 씨는 귀순으로 새 삶을 시작했지만, 낯선 한국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살된 무장공비 동료와 북한에 남겨둔 가족 등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받던 그는 한때 술과 담배,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방황하던 그를 기독교 신앙의 길로 이끈 것은 아내 최정화 씨였다. 최씨는 "남편은 귀순후 신변보호 위해 가명으로 바꿔 살았으며,반공강연 3000여회 하는 등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헌신, 밥값은 하고 사셨다"며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셨다"고 했다.

1981년 아내의 권유로 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1989년 기독인귀순용사선교회를 창립하는 등 신앙 활동에 매진했으며 1997년 1월 21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무장공비 최초의 안보강연자로 나서 ‘안보 강연의 1인자’로 불렸던 김 씨는 2010년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납북자 위원회 고문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경기 남양주의 성락삼봉교회와 서울 영등포구 서울성락교회 등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02-2676-4444). 발인은 12일 오전 5시. 장지는 경기 파주 용미리 자연장.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