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정치부 차장

국민의힘은 대통령 선거 구도를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으로 잡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조기 대선은 이재명과 민주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며 “이재명 세력을 막아내는 것이 국가 정상화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한 불안감을 키우는 국민의힘의 전략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한 지난해 12월부터 가동됐다. 대표적으로 박수영 의원은 ‘이래서 이재명이 안 됩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김웅 전 의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전 의원은 “우리 당은 백의종군해야 한다”며 “무도한 민주당 일당에 맞서 싸울 양심적이고 유능한 국민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국민의힘의 전략에는 변화가 없다.

국민의힘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제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이 떠오른다. ‘버블 세븐’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연이은 실정에 노무현 정부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신당으로 ‘간판’을 갈았으나 정국의 흐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신당이 선거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후보 검증으로 포장한 네거티브 공세였다. 다스와 BBK 관련 의혹 제기에 전력을 퍼부었다. ‘이명박은 나쁜 사람이니 우리를 뽑으라’라는 수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역대 최대 격차의 참패였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617만4681표(26.14%)를 얻는 데 그쳤고, 이명박 후보(1149만2389표, 48.67%)에게 530만 표나 뒤졌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각각 1201만4277표, 1144만3297표를 얻었다. 이명박과 이회창의 득표수는 거의 차이가 없지만, 민주당 계열의 득표수는 600만 표 가까이 줄어들었다. 상대 후보 약점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유인할 수 없었던 셈이다. 17대 대선의 투표율이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 중 가장 낮은 63.03%에 머물렀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국민의힘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미 18년 전 신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치러진 경남 거제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인 변광용 시장은 5만1292표(56.75%)를 얻어 박환기 국민의힘 후보(3만4455표, 38.12%)에게 18.7%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3년 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국민의힘 득표수는 1만 표가 줄었다. 투표율이 4%포인트 하락했음에도 민주당 득표는 7000표 가까이 늘었다. 보수 정당의 충격적인 패배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투표를 외면한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선이 다가오면 정치권에서는 발광체, 반사체 논쟁이 벌어지고는 한다. 반사체로 평가받는 인사들도 스스로 발광체라고 주장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놓고 이 전 대표의 잘못에 기대 빛을 내보겠다고 하고 있고, 재·보선을 통해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됐다. 유권자가 보낸 경고를 무시하고 대선에 임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조성진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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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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