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 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의 통화를 포함한 여러 나라와의 협상을 ‘원스톱 쇼핑’이라고 표현했다. 경제·안보 및 상호 관심사 모두를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동시다발적, 포괄적 협상을 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트럼프는 관세라는 무기를 휘둘러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경제·통상 문제와 함께 한반도 안보와 미국의 방위공약 이행이 매우 중요한 의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히 타산적이고, 불평등한 주고받기식 거래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반면, 물가 상승과 주가 하락 등 관세 전쟁의 여파에 대한 대응의 우선순위로 인해 지정학적 고려나 동맹의 중요성 등 전통적 차원의 전략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한국을 현금 인출기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미동맹의 가치를 호소하고 호의적 고려를 읍소하는 일은 약한 모습만 드러낼 뿐 효과는 없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대응은 우리의 입지에 불리하며 냉철하고 전문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부가 보복이 아닌 협상을 택한 것은 현명한 첫걸음이다. 25%의 관세 부과가 일단 유예됐지만, 이에 수반되는 통상 협상은 국익 차원에서 지체 없이 개시되고 신속히 마무리돼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 핵 문제, 미·북 정상회담,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전략적 유연성) 등 외교 안보 현안의 협상(협의)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방위비 분담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어처구니없는 증액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정권교체 후 합리적 수준으로 합의됐다.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 건설비, 군사 지원비의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 가지 항목으로는 아무리 늘려 봐도 기존 규모의 1.5배 이상을 넘을 수가 없다.
그런데 트럼프는 1기 때 기존의 세 가지 항목 외에, 역외 미군 전략자산 전개 비용과 주한미군 순환 배치 비용 등을 새로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추론컨대, 미국은 이번에도 그때의 입장을 반복하면서 현재 1조5000억 원 규모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면, 우리 안보 강화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져 진지한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최대’라는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64년 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소련과의 평화 협상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며, ‘두려움에 쫓겨 협상하지 말되, 협상을 두려워하지도 말자’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해낼 수 있는 외교적·경제적 역량이 충분하다. 정치가 타락과 실종을 반복하며 국민을 저버릴 때일수록 정부는 강인한 자세로 국내외로 어려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의 정책이 일시적 일탈인지 항구적 변화의 시작인지를 물으며 주저해서도 안 된다. 어차피 지금의 천방지축 변화는 트럼프 이후에도 일부 남아서 뉴노멀을 형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강 노력 속에 상황에 맞게 능동적 대처를 하는 것이 2029년 미국의 새 대통령을 마주할 준비를 하는 실용적 자세이기도 하다. 그때는 중국도 북한도 미국도, 세상은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