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알린 T. 제로니머스 지음│방진이 옮김│돌베개

30년 넘게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건강의 관계를 연구해 온 세계적 공공보건학자인 저자는 미국 보건복지부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1985년에 이미 인종 간 수명 불평등 문제를 인정했다고 말한다. 당시 백인 인구 집단 전체의 기대수명은 75.3세, 흑인의 경우 69.3세였다. 이후 복지부는 인종 간 건강 격차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도했지만 오늘날 격차는 유지되거나 일부 질병의 발병률 격차는 오히려 커졌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정부가 ‘행동적 원인’에 골몰해 오판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에 미국 사회는 흡연과 고지방·고콜레스테롤 식단, 적어지는 운동량 등으로 인해 암과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 발병이 늘어난다는 점에 집중했다. 따라서 인종별 경제 격차 해소보다 절대적 빈곤 탈출을 건강을 위한 1순위 과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와 같은 접근법이 결국 건강 악화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직격한다.

나아가 저자는 인종에 대한 차별, 더불어 모든 차별 자체가 건강과 수명에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며 그 과정을 ‘웨더링’(풍화)으로 명명한다. 먼저 빈곤한 흑인이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위해 ‘죽을 정도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부유한 집단에서도 흑인의 수명이 백인에 비해 짧은 것에 대해 타고난 ‘사회적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차별을 마주하는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책장을 덮으면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는 느낌보다 ‘나를 죽이고 있다’는 실체적 위협이 전해져 온다. 509쪽, 3만1000원.

장상민 기자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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