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의 서재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료하다 설명하기 힘든 싸한 느낌이 들었다.
“휴대전화 해킹당하는 것 같지는 않나요?”라고 물으니 “어떻게 아셨어요?”라 대답했다.
조현병 환자가 우울하다고 온 것이었다. 일반적 우울증과는 다른 표정, 말투에 싸한 느낌이 들어 방향을 틀어 물어봐서 밝혀낸 것이다. 30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로 축적한 경험들이 먼저 느낌으로 판단을 하고 나중에 유추하게 해주었다. 이와 같이 머리가 아닌 장에서 먼저 느끼는 것이라는 의미로 ‘gut feeling’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고, 라틴어 안쪽(in)을 바로 본다(tueri)에서 유래한 ‘직관’(intuition)이 공식 용어다.
살다 보면 심사숙고 끝의 결정보다 직관적인 결정이 나중에 더 정확할 때가 많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편견이 되거나 즉흥적 판단으로 큰 손해를 볼 위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느낌적 느낌으로 하는 결정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있을까? 조엘 피어슨의 ‘더 좋은 결정을 위한 뇌과학’(알에이치코리아)은 나은 직관을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1984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한 존 뮤어는 마지막 정상 도전을 바로 목전에 두고 이유 없이 울렁거리고, 몸이 처지는 기이한 느낌을 경험했다. 지금 멈추면 올해의 등반은 실패로 끝나는 것이지만 하산을 결정하고 팀원들에게 통보했다. 제안을 반대한 두 명은 등반을 계속했고 강한 바람에 미끄러져 사망하고 말았다. 존 뮤어는 ‘무의식적 정보를 학습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더 나은 결정이나 행동을 끌어내는 능력’인 직관이 뇌를 거쳐 내부 수용감각에 신호를 보낸 것에 반응을 한 덕분이라 설명한다.
그는 직관의 규칙을 자기인식, 숙달도, 충동과 중독, 낮은 확률, 환경을 지칭하는 단어의 앞자를 따서 SMILE이란 약어로 정리했다. 먼저 감정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흥분, 두려움과 같은 감정에 따른 판단을 직관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차분한 감정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그때 오는 직관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라 조언한다. 체스 마스터들은 설명하지 않고 실행하고, 복잡한 한판의 경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복기할 수 있다. 그만큼 숙달된 것들은 직관적 판단이 가능하다. 내가 전문적인 분야는 숙달된 것이니 직관이 잘 작동할 수 있으나, 다른 영역에도 그만큼 직관적이라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술, 단것과 같이 도파민적 보상을 주는 것에 대한 갈망을 직관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익숙한 환경이나 경험적 맥락의 친숙함이 직관적 판단에 영향을 준다. 환경이 바뀌면 재학습이 필요할 수 있다.
전문가라고 자신하는 사람일수록 이처럼 직관에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불필요한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경험을 일반화하지 말아야 하고, 재빠른 판단을 조심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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