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적화라는 환상
코코 크럼 지음│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산업부터 쇼핑·연애까지
최적 조건만 좇는 현대인
짜여진 틀에만 맞춰 생활
농작물 개량·기계화 통해
오랜 농업 지식 잃어가듯
최적화 따른 대가는 혹독


‘더 많이, 더 좋게, 더 빨리.’ 이 단순한 공식은 이제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물론, 매일의 루틴을 설계하는 개인까지도 우리는 언제나 ‘최적의 해법’을 좇으며 살아간다. 제품은 더 빠르게 만들어야 하고, 사람은 더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며, 관계조차 ‘잘 맞는 사람’을 매칭해 주는 앱에 맡겨버린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 있는 수학적 개념이 바로 ‘최적화’다.
문제는 수학에서 출발한 이 최적화 모델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약조건을 고려하면서 변수들을 조절하는 방식, 이 단순한 구조는 수세기에 걸쳐 정교해졌고 컴퓨터의 발전과 함께 물류, 광고, 자동차 생산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으로 확대됐다.
세상을 더 잘게 쪼개고,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하면서 물질도, 정보도, 감정조차도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예컨대, 미국의 신발회사 자포스에서는 상담원의 ‘감정적 유대감’까지 점수로 환산해 보상을 결정한다. 고객이 감탄한 순간을 수치화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것이다. 데이팅 앱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 앱은 이상적인 배우자가 갖춰야 할 72개의 조건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그 기준에 따라 ‘짝 찾기’를 자동화한다.
인간의 노동은 물론 감정과 매력까지도 알고리즘 속으로 들어간 이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 저자는 우리가 최적화에 모든 것을 맡긴 대가로 ‘지식’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농업이다. 오늘날 미국의 농업은 세계무역의 알고리즘에 따라 작물을 경작하고, 인간은 토지에서 멀어졌다. 수확하기 쉬운 품종을 만들고 경작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나 그 원리를 아는 이들은 현장에 거의 남지 않게 됐다. 최적화 과정에서 생산이 ‘추상화’된 것이다.
2021년 텍사스의 대규모 정전 사태는 이 추상화의 끝을 보여준다. 복잡하게 설계된 전력망은 효율적으로 보였지만, 막상 텍사스의 절반 이상에서 전기가 멈췄을 때 아무도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마치 지금의 인공지능(AI)처럼 결과물은 생성됐지만 그 중간 과정에 대해 관리자가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수에즈 운하의 에버기븐호 좌초, 사상 최다 항공기 결항을 기록한 2022년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너무 잘 짜인 시스템은 결국 인간이 다룰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저자 코코 크럼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한, 말하자면 ‘최적화의 심장부’에 있던 사람이다. 그는 어느 순간, 그 맹점을 인식하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최적화가 가져온 부작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에 최적화는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시작됐다. 공장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여가를 늘릴 방법이라고 홍보됐지만 정작 부의 분배는 더욱 불평등해졌다. 20년에 걸친 온라인 검색 알고리즘의 발전은 덜 알려진 아이디어와 상품을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유명한 상품과 콘텐츠만 강력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경제학 용어로도 흔히 쓰이는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표현에는 수학 정리가 숨어 있다. 모델의 복잡성을 줄이는 순간 그것의 설명력도 감소한다는 원리다. 다시 말해, 지름길은 없고,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 사회의 최적화 속에 생략되는 중간과정, 사라지는 지식이 어쩐지 지금의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챗GPT가 손쉽게 그려주는 ‘지브리 풍’ 이미지에는 창작자의 고민도, 맥락도 없다. 지브리 캐릭터와 닮게 만들어진 내 얼굴은 어떤 경로를 통해 생성됐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 사라져버린 것들이 바로 거기 있다. 304쪽, 1만9000원.
신재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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