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토끼와 나무
발린트 자코 지음│보물창고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아와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시작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보여주는 이 첫 장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감동으로 복기된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친구를 사귀고 숲을 이루는 역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늑대에게 쫓기던 토끼가 뛰어들자 나무는 토끼를 숨겨준다. 이번엔 토끼가 제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무를 위해 신나게 바퀴를 굴린다. 연약한 가지와 이파리로 친구를 구한 나무와 친구의 뿌리까지 수레에 고이 싣고 떠난 작은 토끼가 세상 곳곳을 누비는 장면은 가슴 벅차도록 짜릿하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일을 단짝 친구와 함께라면 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땐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해지고 무엇을 하든 재미있는 법이다.
비바람을 뚫고 캄캄한 밤을 지키면서 토끼와 나무의 수레바퀴는 나아간다. 초원에서는 기차가 되고 바다에서는 돛단배가 되며 산에서는 비행기가 된다. 토끼와 나무가 타고 다니는 그 괴상한 수레바퀴가 자꾸만 유모차로, 휠체어로, 서로를 부지해주는 그 어떤 우정과 연대로 보여서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184페이지에 달하는 이 그림책은 단 한 줄의 글도 없지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토끼와 나무가 이루어가는 관계를 깨닫게 한다. ‘토끼와 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비견할 만한 특별한 서정성을 새로운 시대성으로 확장시킨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우정이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것이었다면, 토끼와 나무에서 읽을 수 있는 우정은 자율과 협력으로 도약한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고전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에서 ‘올해 최고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타인을 위한 용기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주고 그 진심이 모여 얼마나 많은 토끼와 나무들이 서로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적을 경험하도록 한다. 184쪽, 2만8000원.
신수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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