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 가는 사람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순경. 어릴 적 달리기를 하다가 친구에게 뒤떨어지면 이런 말로 정신 승리를 하곤 했다. 도둑을 잡는 것이 순경이니 달리기는 못하지만 앞선 사람은 나쁜 사람, 뒤처진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도둑은 늘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밥도둑’이 그것인데 말 자체로는 밥을 훔쳐가는 도둑이란 뜻이지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정도로 맛이 있어 마치 밥을 훔쳐가는 도둑 같다는 뜻이다.
도둑이 판을 치면 경찰이 나서야 하니 ‘밥경찰’이란 말도 쓰인다. 밥상에서는 밥도둑과 반대의 뜻이어야 하니 밥 한술 뜨기도 어렵게 만드는 맛없는 반찬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식당과 달리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학교나 직장의 급식을 두고 주로 쓴다. 이보다 더 맛이 없으면 ‘밥군인’이나 ‘밥검찰’이라 표현하다가 급기야 ‘밥검찰총장’이나 ‘밥대법원장’도 등장시킨다.
이런 말들을 접할 때마다 밥맛이 쓰다. 밥도둑은 비유적이고도 해학이 담긴 말이다. 비록 현실에서 도둑과 경찰이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밥상에까지 밥경찰을 불러들일 이유는 없다. 그런데 경찰에 대한 불만, 나아가 검찰과 판사들을 포함한 법조인에 대한 불신이 곁들여져 이런 말들이 생겨난 것이다.
지난 넉 달 동안 밥맛이 뚝 떨어지고 잠이 확 달아나는 상황을 겪었다. 밥상에서는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현실에서는 고마워해야 할 군인과 경찰이 동원됐다. 그 맨 우두머리에는 검찰 수장 출신이 있었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듯한 판사들도 있었다. 법원과 검찰청을 나온 변호사와 국회의원들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변호 혹은 옹호하는 풍경도 지켜봐야 했다. 이들로 인해 편이 갈렸고 거리에서 소모전을 치러야 했고 밥상머리에서 말싸움을 해야 했다. 밥도둑은 반갑지만 나머지는 전혀 아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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