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은 얼핏 보면 헷갈린다. 온 사방에 무차별 관세를 난사하다가 이제는 중국에만 145% 보복 관세로 정밀 포격하는 등 갈팡질팡한다. 미국은 스스로 위대한(great) 나라에서 큰(big) 나라 중 하나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나 미국 시사 월간지 ‘더 애틀랜틱’의 분석은 다르다. 그 뒤에 정밀한 설계도인 ‘미란 보고서’가 숨어 있다고 본다.
정식 명칭은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다. 미국의 무역·재정 적자를 해결하려면 먼저 징벌적 관세로 겁을 준 뒤 환율 전쟁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을 지키면서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는,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는 1960년대 미국 무역적자 확대와 기축통화 사이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미란은 ‘마러라고 합의’를 비장의 카드로 제시한다. 트럼프 소유의 마러라고에 세계 주요국 대표들을 모아 놓고 징벌적 관세를 깎아주는 대신 1985년 플라자 합의처럼 강제로 환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유로·엔·위안화 등을 대폭 절상시켜야 쌍둥이 적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위해 제로 금리의 100년 만기 미 국채를 강매하자고 주장한다. 상대 국가들이 초장기 미 국채를 떠안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면 기축통화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 때는 일본과 독일의 손만 비틀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중국이 결사항전 태세다. 미국의 ‘관세=채찍, 안보=당근’ 카드가 중국에도 먹혀들지 의문이다.
미란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 지도 교수인 마틴 펠드스타인도 44년 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았다. 감세 공약의 설계자였던 그는 합리적 감세론을 펼쳤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공격적 감세를 밀어붙이는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과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결국 감세 정책은 성공했지만, 미국 경제는 2∼3년간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번에 미란도 “작게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부터 너무 큰 도박에 나섰다. 자칫 세기적 정책 실패로 남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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