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지난달 21일 중국 고등학생 2명이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착륙하는 전투기를 무단 촬영하다 주민의 신고로 붙잡혔다. 18일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들의 행적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이다. 입국한 지 3일 만에 한·미 군사시설인 오산과 청주 공군기지, 평택 미군기지 및 국가중요시설 최고 등급인 인천·제주·김포 국제공항 등을 누비며 찍은 사진만 수천 장이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2∼3차례 입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정보요원인지 정말 학생인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도 관광비자로 입국한 중국인이 곧바로 국가정보원으로 가서 관련 시설을 드론으로 무단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그리고 지난 1월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국제공항을 드론으로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누가 봐도 관광 목적이 아니라 정보 수집 목적임이 명백하지만,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한다.
그것은 형법 제98조의 간첩죄가 ‘적국’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군형법 제13조의 간첩죄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우방이나 외국에 의한 간첩 활동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1993년 시노하라 마사토 일본 후지TV 서울지국장이 1989년부터 국방부 장교로부터 군사비밀 22건을 빼내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넘겨주다 적발됐다. 그 장교는 군사기밀누설죄로 징역 4년형, 시노하라는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강제 퇴거당했다. 2018년 6월 중국 정보요원에게 160여 건의 군사기밀을 팔아넘기다 체포된 정보사 요원도 군사기밀누설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8월 구속기소된 정보사 공작팀장의 군사기밀 누설 때도 간첩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대다수 국가는 간첩죄 적용 대상을 우리나라처럼 ‘적국’으로 제한하지 않고 ‘적국’ 및 ‘외국’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법(U.S. Code) 제793조, 794조, 798조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으로 간첩행위뿐만 아니라 허가 없이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도 처벌한다. 또한, 경제스파이법과 영업비밀보호법을 제정해 산업기밀 유출 행위도 사실상 간첩죄로 처벌한다. 일본도 2013년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해 특정 정보를 유출했을 때 적국과 외국을 구분하지 않고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형법에 간첩죄 조항이 있는데도 2021년 ‘반(反)간첩법’을 시행해 국가를 배신하도록 선동·유혹·매수하는 행위까지도 처벌한다.
외국과 북한에 의한 간첩 활동으로부터 안보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간첩 법제 개정이 화급하다. 현행 간첩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때 조항이다. 그동안 정치사회 환경과 IT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간첩 활동의 수단과 방법이 고도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72년 전의 간첩죄 조항을 가지고 대응하라는 것은 ‘석기시대의 방패’를 가지고 ‘21세기 첨단무기’를 상대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현행 간첩 법제는 간첩 활동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되레 보장해 준다. 지난해 말 간첩죄 관련 개정법안이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고도 ‘권한 남용과 인권탄압’이라는 해묵은 논리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의 반대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는 거대 정당의 안보 직무유기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슈화해서라도 조속히 간첩 법제를 개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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